한국일보>

채지선 기자

등록 : 2018.04.17 17:25
수정 : 2018.04.17 21:39

성폭행 1년 3만건... 인도 여성들 호신술 연마

등록 : 2018.04.17 17:25
수정 : 2018.04.17 21:39

강한 남아선호ㆍ왜곡된 남성성 탓

델리 ‘여성 위험한 도시’ 4위 올라

경찰, 태권도 등 무료 교육 나서

연이은 집단 성폭행에 여론 분노

모디 총리 “딸들 위한 정의 약속”

15일 인도 잠무 인근 카투아에서 8세 소녀가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카투아=EPA 연합뉴스

“오스!(무술 시작 전 하는 일본어 인사말)”

이달 초 11~17세 사이 인도 여학생 180여명이 인도 뉴델리의 학교 강당에 모였다. 뉴델리 경찰이 운영 중인 10일 무료 ‘호신술’ 수업 중 7번째 시간이었다.

수업 도중 몇몇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었지만 이내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수업을 지도하는 뉴델리 경찰서 소속의 여경관 콘스타블 레누가 “웃지마세요.

공격하는 사람이 웃으면서 공격할 것 같아요? 분노로 가격하란 말이에요”라고 외쳤다. 레누는 수업에서 신체 각 부위를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일본 무술 가라테와 우리나라의 태권도, 유도 등을 접목한 기술을 인도 소녀들에게 전수해줬다.

지난해 언니가 길을 걷다 폭행을 당한 후 자신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크게 느끼게 됐다는 모나 샴시어(16)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인도에서 남자들은 우리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대한다. 소녀들은 안전하지 않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좀처럼 줄지 않는 탓에 호신술을 배우는 인도 여성들이 늘고 있다. NYT는 16일(현지시간) 호신술을 배우는 인도 여학생들의 수업 과정을 소개하는 보도를 통해 인도 내에서 고질병과도 같은 여성 폭력 문제를 지적했다.

인도 국가범죄기록국에 따르면 인도 내 성폭행 건수는 2012년 2만4,923건에서 2013년 3만2,707건으로 증가한 뒤 계속해서 3만건대를 기록 중이다. 2012년 뉴델리에서 남성 4명이 버스에 탄 여대생을 집단 성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범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좀처럼 성폭력 범죄가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비영리기구인 톰슨로이터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델리는 이집트 카이로, 파키스탄 카라치, 민주콩고 킨샤사에 이어 여성들에게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혔다. 손자를 둔 인도의 한 남성은 NYT에 “델리는 어린 소녀들에게 좋은 장소가 아니다. 손녀가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 것은 남아 선호사상이 강한데다가, 인도 남성들의 남성성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평범한 남성에게 남자다움이란 거칠게 행동하고,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특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걸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폭력은 남성의 수입과 교육 수준, 연령에 관계 없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이 인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초 인도 잠부 인근 카투아에서 8살의 무슬림 소녀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잔인하게 살해된 채 버려진 사건이 대중의 공분을 산 뒤 그 흐름은 더욱 거세졌다. 특히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힌두 극우 성향의 인도국민당(BJP)과 연관이 있는 극우 성향의 단체힌두통일위원회가 성범죄 용의자들을 두둔하는 시위를 벌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지난주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소속 의원이 16세 소녀를 성폭행함 혐의로 체포되면서 여론은 더욱 들끓고 있다. CNN은 “인도 전역에서 수 천명이 일련의 성폭행 사건에 반발하며 거리로 나왔다”며 “2012년 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 이후 벌어진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소개했다.

한편 모디 총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지난 13일 침묵을 깨고 “우리의 딸들을 위한 정의를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은 “우리는 언제쯤 우리 딸들이 정의를 얻을 수 있는 지를 알고 싶은 것”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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