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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하늘 빛 바람...건축물이 놓인 지역을 먼저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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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하늘 빛 바람...건축물이 놓인 지역을 먼저 봐야"

입력
2017.11.11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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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 건축가 카르메 피젬이 8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7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 건축가 카르메 피젬이 8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설계할 때 주위 먼저 탐색

재료 최소화해 집중도 높여

“건축은 자연을 개척하고 바꾸는 데서 시작합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거친 자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건물을 짓지만, 결국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죠.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평안을 누리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건축 역시 자연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란 불리는 2017 프리츠커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카르메 피젬(55)이 한국을 방문했다. 피젬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작은 마을 올로트 토박이다. 1988년 같은 지역 출신인 라파엘 아란다, 라몬 비랄타와 함께 각자의 이름 첫 글자를 딴 건축사무소 RCR 아르끼떽또스를 설립한 뒤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번 프리츠커상도 이들과 함께 수상했다. 프리츠커 39년 역사상 3명의 공동 수상은 처음이다.

지난 8일 한국일보와 만난 피젬은 20대에 회사를 설립해 30여년간 한 지역에서 운영하는 게 스페인에서 흔한 일이냐는 질문에 “흔하진 않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라며 웃었다.

“건축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공간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 세 사람이 30년간 함께 일해온 것에 대해서도 큰 자부심을 느껴요. 많은 사람들이 창의력은 한 개인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창의력을 공유할 때 평범한 사람들도 비범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피젬과 동료들이 집중하는 것은 건축물과 그 건축물이 놓인 지역, 자연, 문화 간의 긴밀한 소통이다. 그는 설계를 할 때 “먼저 감각적인 개념(sensual concept)을 정의한 뒤 바깥 풍경과의 관계를 탐색한다. 그 다음 가능하면 한 가지 재료만 사용해 건물을 짓는다”고 밝혔다. 재료를 제한하는 이유는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면 공간에 들어설 때 시선이 분산됩니다. 하지만 재료를 단일화하면 공간 자체에 집중할 수 있죠. 빛이 어디서 어떻게 들어오는지, 건물의 비율은 어떤지, 풍경과는 조화를 이루는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카르메 피젬의 작업은 지역의 자연과 문화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공간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가지 재료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카르메 피젬의 작업은 지역의 자연과 문화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공간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가지 재료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그가 추구하는 자연과의 조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하에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를 설계할 때는 신선한 공기와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개구부를 조정하고, 육상 트랙을 만들 땐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주변 자연을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바르셀로나에 설계한 도서관은 바깥도로와 안쪽 골목이 건물로 인해 차단되는 걸 막기 위해 건물 일부를 관통되는 구조로 디자인했다. 하늘과 빛, 바람을 통과시킨다는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효과를 낸다. 빽빽한 도시 안에 녹지를 우겨 넣는 방식 보다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다.

“도시의 문제점 중 하나는 건축물에 막혀 자연을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거리에 꽉 찬 건물은 도시를 삭막하고 답답한 곳으로 만들어요. 도시엔 숨통이 필요합니다. 조금이라도 하늘을 접하고 공기를 맛 보는 것으로도 도시에서 사는 일이 훨씬 좋아질 거예요.”

지역 특유의 자연과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피젬의 작업은 최근 건축계의 주요 화두인 지역성과 맞물린다. 대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는 개성 있는 건축가 대신, 한곳에 뿌리내려 살면서 지역의 상황을 세심하게 살피는 건축가에게 프리츠커상이 주어진 것은 현재 건축계의 관심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피젬은 앞으로도 지역성이 세계 건축계의 화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 지역에 머무르며 일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중요한 건 ‘어디에서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일하느냐’겠죠. 지구 구석진 곳에서의 작업도 보편적인 메시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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