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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분노하지 않았다… 모두 부끄러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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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분노하지 않았다… 모두 부끄러웠을 뿐이다

입력
2016.11.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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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이 온통 시민들로 가득 하다. 홍인기 기자 ikhong@hankookilbo.com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이 온통 시민들로 가득 하다. 홍인기 기자 ikhong@hankookilbo.com

날짜를 기억해두자.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이었다. 틀림없이 써먹게 될 테니 날씨도 적어두자. 살이 시릴 만큼 바람이 찬데 기온은 포근해서, 버스와 지하철을 탄 승객들은 겉옷을 껴입고서 땀을 흘렸다. 하늘은 우중충했고 마른 습기가 거리 어디서나 맡아졌다.

집회가 있는 시청 광장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나는 승객들의 표정을 살폈다. 집회 일정이 공개됐고 대규모 참가가 예고됐으니, 승객들 대개는 나와 비슷한 이유로 서울시청 광장으로 가고 있을 것이었다. 3시 40분. 평소의 몇 배는 될 승객들이 시청역에서 내렸다. 개찰구에 줄이 너무 길게 서자, 역 승무원이 나와 다른 개찰구로 안내를 했다. 광장으로 나가는 6번 출구는 사람들로 미어졌다.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가는 데도 금요일 밤의 홍대입구역에서처럼 한참 줄을 서야 했다.

언론에서는 100만이 모였다고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최대 규모라고 했다. 2008년 광우병 집회의 70만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시청 광장으로 가는 시민들의 표정에서 긴장은 느껴지지 않았다. 데이트를 하러 나온 것 같은 젊은 남녀도,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녀들도, 어버이연합이 아닌 시민단체 깃발 아래 모인 어르신들도 동네잔치나 축제에 짬을 내 들른 사람들 같았다. 표정은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고, 구호를 외칠 때면 가벼운 즐거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11월 12일은 과잉진압에 희생된 백남기 농민의 49재날이었다. 고인이 어떻게 사망에 이르렀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분위기였다.

내가 처음 서울 시내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던 1990년대 초반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그때는 종로나 광화문에서 집회가 있어도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위험한 일이니만큼 규율도 대단했다. 집회 장소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학생들의 표정은 어둡고 긴장되어 있어서 쉽게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위에 쓰이는 화염병은 평소 책가방으로 쓰이는 백팩에 넣어 옮겼다. 쇠파이프는 실수로 놓치지 않기 위해 두 손에 박스테이프로 칭칭 감아 고정시켰다. 집회가 시작되면 최루탄을 쏘는 차량과 전투경찰, 그리고 시위대의 선봉 사이에 폭력의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그어졌다.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이 나오고 전경이 전진하기 시작하고, 보도블록이 깨지기 시작하고 시위대는 잠깐 저항하다가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뒤로 몇 블록 밀리다 다시 전열을 정비해 전경들 앞에 섰다. 어느 날은 그런 식으로, 명동에서 광화문을 거쳐 종로를 지나 동대문을 넘어 신설동까지 집회를 계속하기도 했다. 그날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집회가 끝나고 버스에 오를 힘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시민들은 공권력의 최루탄과 물대포와 쇠파이프에 쏘이고 맞고 쓰러지면서 매번 뒤로 밀렸다. 내가 알기로 당시 있었던 어떤 집회에서도 우리 시민은 공권력의 난폭한 벽을 뚫고 앞으로 전진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뒤로 밀렸고 강제로 해산되었으며 그 와중에 백남기 농민이 그랬듯이 강경대 같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기도 했다. 우리는 매번 패배했다. 하지만 매번 다시 거리로 나왔고 다시 뒤로 물러섰지만, 한 번도 완전히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리고 1993년, 32년을 이어온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그에 비하면 11월 12일의 민중총궐기 집회는 그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얼마나 가볍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치러졌는가. 시민들은 화염병 대신 촛불을 들고 행진을 했다. 구호를 외치면서도 웃었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화를 내기보다는 조롱을 했다. 바보에게 어울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조롱이라는 듯이. 아무도 뛰지 않았고 집회 과정에서 나온 쓰레기는 직접 치웠다. 행진하면서 누구나 대열을 빠져 나와 카페를 가거나 잠시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었다. 규율은 없었지만 누구도 시민이 지켜야 할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집회문화가 평화롭게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정부는 폭력이니 불법이니 하고 딱지를 붙인다. 불법은 물로 사람을 쏘아 죽인 박근혜정부에 어울리는 말이다.

11월 12일 집회는 그저 대중매체를 통한 홍보만 있었는데도 정말 다양한 시민들이 모였다. 청와대 가는 길에 세워진 시민발언대에는 대학생이 올라 연설을 하고, 종로 길에서는 래퍼가 나와 대통령의 실정을 질책하고, SNS를 보니 초등학생도 연단에 올라 게임 레벨 업을 할 시간에 대통령 때문에 집회에 나왔다며 한탄을 했다. ‘개저씨’ ‘아재’라며 놀림이나 받던 중년남성들이 집회에 구름같이 몰렸다.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개인주의자라고 비판 받던 대학생들도 깃발 아래 모여 섰다. 몇 달 전만 해도 어버이연합 깃발을 들고 있었을 것만 같은 어르신들도 ‘#끝났다 박근혜’라고 쓰인 종이컵에 촛불을 켜고 나왔다.

이들은 12일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으면 정치권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침묵하는 다수’라고 불렸을 시민들이다. 이 ‘침묵하는 다수’는 “조용하고, 부끄러워하고” “시끄러운 소수로부터 ‘법’을 보호해야만” 하는 역할을 하므로, 주로 선거철에 호명되어 불려나온다. 뉴욕대 교수인 크리스틴 로스의 ‘민주주의를 팝니다’에 따르면 이들은 “그 수가 가장 많은 집단이 스스로 말하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대변될 때” 역사 속에 등장하고, “무질서나 독단에 대항하는 양식의 보루”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하는’ 다수이므로, 그 다수의 정체나 역할은 자기 자신에 의해 규정되거나 표명된 것이 아니다. 로스에 따르면 ‘침묵하는 다수’라는 용어의 기원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다. 워터게이트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닉슨이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끄러운 가두시위에 대응할 목적으로” 이 용어를 발명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침묵하는 다수’라는 이름은, 그들 자신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거철이나 중요한 시국에선 보수적인 지배 계층의 정치적 동지인 양 등장해, 여론조사와 투표라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증명한다.

나는 11월 12일 광화문에서 그 ‘침묵하는 다수’의 실체와 마주쳤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발명되고 조작된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시끄러운 다수’였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광화문 광장이나 SNS에서 만나게 되는 시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 시끄러워진 다수이다. 보수적 지배 계층이 자신을 대변하도록 하지 않고 스스로 말을 하는, 스스로 모종의 억압으로부터 회귀한, “시끄러운 소수”처럼 행동하기로 작정한 다수이다.

‘시끄러운 다수’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리고 그들을 불러낸 것은 박근혜정부의 실정이다. 최근 박근혜정부에서 흘러나온 끔찍한 소식들이 ‘시끄러운 다수’를 불러냈다. 12일 집회 현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대통령과 관련된 혐의 내용들이 쉴 새 없이 되풀이됐다. 그 영상들을 보면서 시민들은 분노하고 욕 하기보다 실소하고 조롱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최순실이 썼고, 정체가 의심스런 재단을 만들어 자금을 조성하고, 부정행위를 거부한 공무원을 “참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고,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했다는 사실은 특별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상식선에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까다로운 경제 지식도, 법 지식도, 정치적 판단도 필요하지 않은, 누가 봐도 실소가 나오는 얼토당토않은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들이 그 ‘침묵하는 다수’를 깨워 시끄럽게 만든 것이다. 막장 드라마는 누구나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막장 드라마가 된다. 지금 박근혜정부가 그렇게 했다. 초등학생부터 백발 어르신까지 광화문으로 나와 연단에 올라서 대통령에 대해 한마디씩 할 수 있을 만큼, 이 박근혜표 막장 드라마는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다. 그래서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대통령을 성토하면서도 마음껏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광화문으로 나간 까닭도 분노해서가 아니다. 나는 기껏 막장 드라마의 등장인물들 같은 작자들에게 휘둘리고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기 때문에 나갔다. 주권자로서, 시민으로서, 한 인격체로서 저 천박한 것들의 시러베장단에 나도 모르게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치 부끄러웠던 것이다.

백민석 소설가

1971년 서울 출생. 1995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단편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 ‘러셔’ ‘죽은 올빼미 농장’이 있다.

※크리스틴 로스의 ‘민주주의를 팝니다’는 ‘민주주의는 죽었는가?’(알랭 바디우 등 지음ㆍ김상운 등 옮김, 난장 발행, 2010년) 145~147쪽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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