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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 진 김서연 "교수 아빠 보수적…본선 당일에야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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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 진 김서연 "교수 아빠 보수적…본선 당일에야 알려"

입력
2014.07.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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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연주회 참가 무대체질

바이올린 수준급…춤은 약해 아쉬워

대회 기간 빵 금지 가장 힘들었죠

미모·지성 갖춘 앵커가 다음 목표

미스코리아 진 김서연. 김주성기자 poem@hk.co.kr
미스코리아 진 김서연. 김주성기자 poem@hk.co.kr

“많이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는데 이 점을 예쁘게 봐 주신 것 같아요.”

명문대 모범생에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제58회 미스코리아 대회 진 김서연(22)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다소 상기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역 예선과 경남 산청군에서의 3주간의 합숙 훈련, 그리고 본선 대회(▶ 관련기사)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씨는 역대 미스코리아 중에서도 몸매 비율이 최고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173cm, 52.4kg에 33-24-35인치의 완벽한 몸매를 자랑한다. 본선 대회에 처음 도입된 비키니 심사 (▶ 관련화보)에서도 플라워 프린트의 비키니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꾸준한 요가가 1등 공신이라고 했다. 특히 지역 예선(서울)에 임박해서는 요가 외에도 필라테스와 스쿼트 등 3시간 이상 강행군을 했다고 한다.

타고난 ‘무대 체질’도 장점이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재능을 보여 무대에 자주 올라본 결과다. 남들 앞에 서기 좋아하는 활발한 성격도 좋은 성적을 내는데 한 몫 했다. 한국 대학생연합 오케스트라에서 만난 지휘자 금난새 선생의 추천으로 시작한 비올라도 맹연습 중이다. 반면, 춤에 약한 점은 아쉽다고 했다. “동료들 중에 춤을 잘 추는, ‘끼’ 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정말 부러웠어요.”

합숙 기간 산청 5일장에서의 ‘오바 걸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전통시장 살리기의 일환으로 한 사람당 5,000원 내에서 “마음껏 사 먹어도 좋다”는 미스코리아 조직위의 지시가 떨어졌다. 동료들은 그 동안 먹고 싶어도 못 먹었던 떡볶이와 순대 등을 마음껏 사먹었지만 김씨는 순간 의심이 들었다. “이건 분명 조직위가 우리를 시험하는 거야. 일종의 미션일 거야”. 그래서 팀원 간 일체감을 보여주기 위해 똑같은 양말을 사 신었다. 다른 팀은 일명 ‘몸빼 바지’라 불리는 왜바지를 여러 벌 샀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순수한’ 시장 탐방 프로그램이었고, 결국 쓸데 없는 물건들만 잔뜩 산 셈이 됐다. 김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오바걸’들이었는데, 그만큼 미스코리아 대회를 앞두고 심리적 압박이 대단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죠”라고 웃었다.

미스코리아 진 김서연. 김주성기자 poem@hk.co.kr
미스코리아 진 김서연. 김주성기자 poem@hk.co.kr

그래도 ‘100일 금(禁)빵’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앉은 자리에서 식빵 하나를 통째로 다 먹을 정도로 ‘빵 마니아’인 김씨였지만 대회를 앞두고는 몸매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빵을 끊어야 했다. 그래서 대회가 끝난 지금, 당장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빵 먹기’를 꼽았다. “일정에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당장 식빵에 땅콩 잼 듬뿍 발라서 실컷 먹고 싶어요.”

사실 출전을 결심하기 까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부산 지역 대학의 교수인 아버지가 무척 보수적이고 무뚝뚝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는 지역 예선은 물론, 본선 대회 직전까지도 비밀로 했다. 대회 당일 아버지께 편지 한 통과 직접 구입한 입장권 2장을 남긴 김씨. 편지에는 “아빠. 지금까지 이렇게 예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 못 드린 것 정말 죄송해요. 꼭 오셔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적었다.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혔는데도 아버지는 한사코 기념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모범생이었던 딸이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해 아빠가 많이 당황하시고 섭섭하셨을 거에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만 할 수 있는 도전이었기에 후회하고 싶진 않았어요. 게다가 좋은 성과를 낸 만큼 이제는 활짝 웃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뉴스 앵커가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인으로서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남은 학업과 언론사 입사 공부에 열중하겠다고 했다. 김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재학중인 재원(才媛)이다. 김씨는 “이제는 풍부한 지식과 내적인 수양을 통해 미모와 지성을 모두 갖춘 앵커가 되고 싶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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