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현 기자

등록 : 2015.12.18 20:00
수정 : 2015.12.18 20:00

그리움으로 말하고 간절함으로 받아 적다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생일 육성시 ‘엄마 나야’

등록 : 2015.12.18 20:00
수정 : 2015.12.18 20:00

엄마 나야

곽수인 외 지음

난다 발행ㆍ260쪽ㆍ5,500원

12일 경기 안산시 원곡고등학교 수능 시험장에서 가방에 세월호 추모 배지를 단 한 학생이 시험을 치르고 나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갈 때 휴대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그리운 목소리로 예은이가 말하고,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에겐 읽을 수 없는 책이 한 권 두 권 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이후 또 다른 책 ‘엄마, 나야’가 출간됐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생일날, 시인들이 아이의 시선으로 써서 헌정한 시 모음집이다. 참사 이후 안산 와동에 치유공간 ‘이웃’을 설립하고 유족들을 상담해온 정혜신 정신과의사, 이명수 심리기획가가 34명의 시인에게 아이들의 생일날 낭송할 시를 청탁했다.

생일모임은 ‘이웃’의 치유 프로그램 중 주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유난히 아이들 생각이 사무치는 생일날 다같이 모여 고비를 넘기자는 취지로, 아이가 좋아했던 음식으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생일상을 차리고 가족, 형제, 친구가 둘러앉아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한다. 모임의 마지막엔 생일시가 낭송된다. 남의 꿈에라도 아이가 나왔다고 하면 무슨 얘기를 하더냐며 매달리는 유족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보다 간절한 것은 아이의 음성이다. “잘 있다”는 한 마디만 들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부모를 위해 시인들은 아이에게 목소리를 빌려주는 심정으로 시를 썼다. 그래서 육성시 모음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진은영 시인은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양의 생일시를 청탁 받았다. 며칠간 예은이의 동영상과 사진을 찾아 보고 예은이 아버지의 페이스북까지 방문했지만 두려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세상 떠난 아이의 마음에 내가 과연 다가갈 수 있을까, 자신의 삶보다 더 소중했던 아이를 잃은 부모 마음을 어떤 언어의 결로 어루만질 수 있을까.”

다같이 시를 낭송하는 시간, 엄마 아빠에 대한 미안함으로 시작하는 시를 부모는 차마 따라 읽지 못했다. 예은이의 언니와 동생, 친구들은 담아뒀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목소리로나마 아이를 만나는 경험은 단순한 위로로 그치지 않는다. 2학년 8반 고 김제훈군의 생일시를 쓴 김민정 시인은 생일모임 후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우리 제훈이 잘 있어요?” 시인이 아이를 만나고 오기라도 한 양 대뜸 아이의 안부를 묻는 어머니에게 시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너무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훈이 매일 엄마 걱정만 해요.”

정혜신씨는 저서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에서 생일시를 굿에 비유했다. 급작스런 이별로 하지 못한 말을 가슴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시인이란 ‘영매’를 통해 못 나눈 감정을 풀어냄으로써 비로소 이별을 완성하는 것이다.

15일 출간된 책은 이틀 만에 초판 3,000부가 다 팔려 현재 2쇄에 들어갔다. 정끝별ㆍ김소연ㆍ김선우ㆍ박성우 등 생일시에 참여한 시인들 외 표지그림을 그려준 김선두 화백, 디자이너 한혜진ㆍ이주영씨, 편집을 맡은 김필균씨, 종이를 댄 한솔피엔에스, 인쇄를 해준 영신사까지 모두 돈 한푼 안 받고 무상으로 참여했다. 인세 전액은 다음 생일시집을 내는 데 쓰인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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