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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안식 찾은 김흥수 화백의 유작

입력
2017.05.2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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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흥수(1919~2014) 화백은 한국 미술계에서 강력한 ‘큰바위 얼굴’ 가운데 한 명이었다. 예술가의 족적은 필름의 음화가 현상액 속에서 마침내 선명한 양화로 떠오르듯 사후에 더 인상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 화백은 생전부터 그랬다. 정신과 육체, 음과 양 같은 대립적 요소를 기하학적 추상과 구상적인 여성의 누드와 조화시켜 강렬한 색채로 화면에 담아내 큰 주목을 받았다. ‘하모니즘(harmornism)’의 창시자, 또는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며 일찌감치 한국 미술계의 거목으로 자리했다.

▦ 대중적으로는 김 화백이 작고하기 전에 사별한 마지막 부인 고 장수현 화백과의 파격적인 로맨스가 널리 알려졌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예술적 동지’로서 1992년 마침내 결혼할 때, 우리 나이로 74세였던 김 화백과 새 부인이 된 제자 간의 나이 차이는 무려 43세였다. 하지만 금단의 선을 넘은 듯한 두 사람의 결혼이 이내 파경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은 빗나갔다. 장 화백은 이후 스승이자 예술적 멘토인 김 화백을 향한 사랑을 지성 어린 내조로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 2014년 김 화백이 타계한 뒤 엉뚱한 일로 다시 한 번 대중적 관심이 일게 됐다. 결혼 후 김 화백의 삶과 예술을 온전히 뒷감당했던 장 화백이 오히려 남편보다 두 해 먼저인 2012년 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장 화백이 관장이었던 서울 평창동의 ‘김흥수 미술관’도 경영난에 빠져 매각될 수밖에 없었다. 작품 보관이 시급했던 김 화백 측은 2013년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의 한 사찰에 73점을 맡겨 뒀다. 그런데 김 화백이 이듬해 마치 아내를 따라가듯 타계하자 사찰이 소유권을 주장했다.

▦ 김 화백은 장 화백과의 사이엔 자녀가 없었다. 하지만 이전 부인 소생의 자녀들이 사찰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등에 마구잡이로 보관되던 유작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4년 만에 작품을 회수해 최근 그 유작들을 재단법인 한올(이사장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에 기증했다. 떠돌던 고인의 유작들이 마침내 제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마침 서울옥션도 지난 27일부터 열린 홍콩 경매에서 고인의 유작 ‘하모니즘’ 등 5점을 출품하고, 별도 전시를 통해 ‘김흥수 알리기’에 나섰다. 고인의 예술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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