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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막말 퍼레이드’ 국민은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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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막말 퍼레이드’ 국민은 분노한다

입력
2016.07.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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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망언

“민중은 개ㆍ돼지 취급하면 된다”

술자리 발언 알려지자 공분 확산

“대한민국이 개ㆍ돼지 우리인가”

교육부 사과에도 파면 요구 확산

朴정부 공직자들 ‘막말’ 왜?

윤창중 대변인ㆍ문창극 총리후보…

전근대적ㆍ권위주의적 발언 이어져

“구시대적 보수정권에 코드 맞추기”

잇단 공직자들의 망언에 국민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민중은 개ㆍ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등 나향욱(47)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술자리 발언 파문이 8일 밤 알려진 뒤 나 기획관에 대한 비판과 파면 요구가 고조됐다. 이런 이들을 믿고 국가정책을 맡겨도 되느냐는 회의가 확산되는 한편 공직자로서 기본 자질과 소양을 검증하는 인사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망언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공직자들. 왼쪽부터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홍인기기자·연합뉴스
망언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공직자들. 왼쪽부터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홍인기기자·연합뉴스

잇단 공직자 망언에 분노ㆍ실망 터져

나 기획관의 망언이 알려진 이후 주말인 9, 10일 온라인 공간은 성토로 뒤덮였다. “우린 개 돼지…. 넌 국가의 내장에서 세금 빨아먹는 십이지장충”(진중권 동양대 교수), “이미 ‘입헌공주국’ 된 지 오래였던가!”(조국 서울대 교수), “정명(正名)하자. 교육부를 사육부로 바꾸라”(음식평론가 황교익씨) 같은 규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개ㆍ돼지를 키우는 우리입니까?”(ID ysbi****) 같은 네티즌의 비난도 빗발쳤다.

공직자들이 물의를 빚는 일이 거듭되며 국민들은 누적된 분노와 실망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 집중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교육계 인사들이다. 나 기획관의 망언이 나오기 불과 얼마 전인 4일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한다”며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현실을 도외시한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2015년 11월 역사 국정교과서 대표집필진으로 선정됐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도 여기자를 성추행한 뒤 “술 맛있게 먹은 죄밖에 없다”고 해명했다가 곧 사퇴했다. 거슬러 올라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 순방기간 중 인턴을 성추행하고 “허리를 한 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하라 말한 게 전부”라고 변명해 비난에 휩싸였고,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일본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2011년 교회 특강 발언이 보도돼 낙마했다.

특히 교육계 공직자들의 발언은, 안 그래도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한 이 시대에 기회 균등과 계층 사다리의 수단으로 기능해야 할 교육의 이념을 내팽개친 인식을 드러낸 셈이어서 사태가 가볍지 않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9일 성명을 내고 “교육의 공공성ㆍ평등의 원칙을 저버린 채 소수 기득권층의 여망에 따라 학교 간 차별적 서열 구조를 만들고 정부 권력을 동원해 이들의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애써 온 교육부 고위 관료들의 인식 상태가 (나 기획관 발언에) 그대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이런 현상은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성격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10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정치적 기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 ‘박정희 신드롬’의 제도적 틀을 만들려 할 정도로 전근대적인 정권 성향에 공무원들이 반응한 결과가 이런 망언들”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 징계 준비에 실효성 부족 지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과 민교협, 전국교직원노조, 교육운동연대, 참여연대 등은 9, 10일 잇따라 나 기획관 발언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파면을 요구했다. 교육부는 “소속 공무원이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깊이 사과 드린다”며 그를 대기발령한 데 이어 경위를 파악한 뒤 엄중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승복 교육부 대변인은 “신속히 조사와 양정을 마치고 인사혁신처에 징계 의결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파면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와 실제 교육부가 할 수 있는 조치 사이의 괴리는 커 보인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품위 유지의 의무 등을 위반한 공무원은 최고 중징계인 파면까지 가능하지만, 지금까지 심각한 비위가 아닌 설화만을 이유로 징계된 선례는 없다. 취중실언으로 여겨 기껏해야 경징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공직사회 전반의 가치관이나 윤리관 검증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권 초기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낙마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비행이 목도되면서 공직자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인사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랐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코드 인사’에 매몰돼 기초적인 자질 검증마저 소홀히 하는 한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내년 대선 국면에 정권이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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