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란 前 서울시 인권위원장
지난 1년간 시민위원 190명 참여한 서울인권헌장 제정 과정 책 출간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 논란으로 市는 인권헌장 공식 선포 미뤄
“인권(신장)의 역사를 보면 항상 순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 쟁취돼 왔잖아요. 세계인권 역사에 하나의 장을 마련한 ‘서울시민 인권헌장’도 그런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낸 문경란(55) 전 서울시 인권위원장은 2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출간의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뿌듯한 듯 하지만 아쉬움도 적잖게 묻어난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지난해 선포된 ‘서울시민 인권헌장’의 제정 과정을 담은 책이다. 문 전 위원장은 “인권헌장 제정 과정의 모든 자료를 모은 백서에 시민위원들의 노력까지 더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까지 3년간 위원장을 맡았던 문 전 위원장의 재임 중 가장 큰 숙제가 바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이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하기로 하고 주부와 고3 수험생, 택시 기사 등 각계 각층에서 위촉된 시민위원 190명이 그해 8~11월 인권헌장에 담을 내용을 논의했다. 문 전 위원장이 “인권헌장 완성 과정이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모델임을 확신한다”고 자부하는 이유다.
그러나 헌장은 제1장 일반원칙 제4조 “서울시민은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성 소수자 차별금지 부분이 문제가 됐다. 일부 시민위원과 종교ㆍ보수단체는 이 부분이 사실상 동성애 허용이라며 극렬히 반대했다. 이에 서울시는 인권헌장 내용의 시민위원회 전원 합의를 요구했고, 시민위원들은 격론을 벌였지만 끝내 전원 합의에 실패했다. 대신 다수결로 성 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간 인권헌장을 의결했다.
시는 전원 합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권헌장을 선포하지 않았고, 일부 시민위원들이 직접 헌장을 선포했지만 그 효력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인권헌장 선포나 폐기에 대한 향후 계획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문 전 위원장은 “당시 시민위원회의 서울시민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역사의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1년이 지난 현재도 시는 ‘시장은 인권헌장을 제정하고 선포해야 한다’는 시 인권기본조례(제12조)에도 불구하고 선포를 미루고 있다.
문 전 위원장은 이번 출간은 인권헌장 선포 압박 등의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참여민주주의를 기록하는 자체로서 의미라고 강조했다. 선포 여부를 떠나 인권헌장 작성의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필수라는 것이다. 문 전 위원장은 “올해 초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출간 계획을 이미 밝혔다”며 “박 시장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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