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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예견한 개그에 빵 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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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예견한 개그에 빵 터지다

입력
2016.11.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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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대통령’ 코너를 이끌고 있는 개그맨 최국은 “날마다 새로운 풍자 소재가 쏟아지는 현실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아이러니를 느낀다”고 말했다. KL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내 친구는 대통령’ 코너를 이끌고 있는 개그맨 최국은 “날마다 새로운 풍자 소재가 쏟아지는 현실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아이러니를 느낀다”고 말했다. KL스타엔터테인먼트 제공

“이게 절대 웃을 일이 아닌데…” 개그맨 최국(41)이 연신 머쓱해하며 쓴 입맛을 다셨다. ‘최순실 게이트’의 나비효과로 요즘 그의 개그가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에 출연 중인 최국은 16일 방송에서 ‘내 친구는 대통령’ 코너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지난 4월 막을 내린 지 7개월 만이다. “코너가 부활해 시청자들을 다시 만나게 된 건 기쁘지만, 그 이유를 생각하면 좀 씁쓸하기도 합니다.”

최국이 대통령으로 나오는 이 코너는 현직 대통령의 고향 친구가 친분을 앞세워 사적인 부탁을 하는 내용으로 꾸며진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시청자들 사이에 ‘현 시국을 예언한 콩트’로 화제를 모았다. 17일 오후 서울 등촌동 SBS공개홀에서 ‘웃찾사’ 녹화를 마친 최국을 전화로 만났다.

과거 ‘내 친구는 대통령’의 친구들은 청와대 앞마당에서 고추를 말리겠다거나 여동생 결혼식에서 축의금 접수를 맡아달라는 등 다소 황당한 부탁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이 잡혀서 못 간다고 해도 “오바마와 친구 중에 누가 더 중요하냐”면서 막무가내였다. “대통령도 누군가에겐 편한 친구이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어요. 당시에도 정치 이슈나 시사 풍자를 담긴 했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친근한 이미지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컸죠.”

콩트 속 대통령의 대사 중에는 “연설문을 어떻게 보고 읽냐, 마치 누가 써준 것처럼”이라든지 “사주에서 중년운은 좋은데(그래서 대통령이 됐다는 의미) 말년운이 별로라고 한다” 등 현 시국과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이 꽤 많다. 또 친구들이 대국민 담화로 자신이 운영하는 족발집을 홍보해달라 부탁하고 동네 지인을 장관에 임명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는데, 이 또한 최순실 일가의 전횡을 떠올리게 한다. 최국도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시청자들을 웃기려고 꾸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실제로 현실이 돼 버리니까, 좀 무섭기도 하더라고요. 당시엔 단순 개그였던 것이 지금은 다 시사 풍자가 돼버렸어요.”

'웃찾사'의 '내 친구는 대통령' 코너는 대통령의 오랜 친구들이 친분을 앞세워 사적인 부탁을 하는 내용으로 꾸며진 콩트다. 개그맨 전승배(왼쪽부터)와 김진곤이 대통령의 친구로 출연하고 최국이 대통령을 연기한다. SBS 제공
'웃찾사'의 '내 친구는 대통령' 코너는 대통령의 오랜 친구들이 친분을 앞세워 사적인 부탁을 하는 내용으로 꾸며진 콩트다. 개그맨 전승배(왼쪽부터)와 김진곤이 대통령의 친구로 출연하고 최국이 대통령을 연기한다. SBS 제공

‘웃찾사’ 제작진보다 앞서 SBS 보도국에서 이 코너를 부활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개 섞인 얘기들이 나왔다고 한다. 제작진은 이 코너를 1~2회 가량 특별 편성하려다 관객 반응을 보고 당분간 고정으로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최국은 풍자의 수위를 높였다. 부활한 코너에서도 친구들은 여전히 막무가내다. “청와대 구경도 하고 밥도 한 끼 먹어보자”거나 “동네에 게이트볼 구장을 짓는데 군청 지원금이 모자라니 네가 사장님들한테 모금 좀 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 우유부단했던 대통령이 달라졌다. “사적인 감정으로 아무나 청와대에 출입시켜서는 안 된다”, “대기업 상대로 모금을 하는 대통령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큰 소리로 발끈한다.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진다.

고향 친구가 광화문에서 양초를 팔아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에 괴로워하던 대통령은 자신의 심정을 담아 노래도 부르는데 가사가 압권이다.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이 끝이 난다. 내 자신을 달래며 하루하루 버티며 꿈꾼다. 이 상황의 끝을.” 방송은 16일이지만 녹화는 10일에 했다. 그때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를 예상했던 걸까. 최국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날마다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니 애로 사항도 많다. 월요일과 수요일에 리허설을 하는데 그 이틀 사이에도 코너 내용이 많이 바뀐다.

최국은 “솔직히 겁이 날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나 외압에 의한 방송 하차 같은 얘기를 들으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시청자만 바라보면서 풍자 소재가 없어서 못하게 될 때까지 죽 웃겨 드릴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통령 주변의 전횡을 감찰하는 자리라고 들었습니다. 시사 풍자 개그가 국민들을 위한 민정수석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16일 방송된 ‘내 친구는 대통령’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심정을 담아 가수 김범수의 노래 ‘지나간다’를 부른다. 절묘한 선곡이라는 얘기에 최국은 “실제로 내 애창곡이라서 쉽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SBS 제공
16일 방송된 ‘내 친구는 대통령’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심정을 담아 가수 김범수의 노래 ‘지나간다’를 부른다. 절묘한 선곡이라는 얘기에 최국은 “실제로 내 애창곡이라서 쉽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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