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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 쓰러질 망정…" 이 악문 사투 또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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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 쓰러질 망정…" 이 악문 사투 또 사투

입력
2015.06.1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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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 유리벽… 노란선만 따라 이동

"컵라면 하나로 새벽까지 근무,

민간병원, 돈 안되는 환자 안받아

떠돌이 만드는 것도 확산의 원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를 격리 치료하고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19일 오전 방호복을 입은 한 간호사가 메르스 환자를 돌보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를 격리 치료하고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19일 오전 방호복을 입은 한 간호사가 메르스 환자를 돌보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19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이하 국립의료원) 5층 중환자실 앞.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치료 때문에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이곳에서 신수영 수간호사에게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신 간호사는 “의료진도 사람인지라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며 “보호장구를 입으면 곧장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탈수로 쓰러지는 간호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는 낮에 컵라면 하나를 먹고 새벽 3시까지 근무했다”며 “동료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국립의료원은 정부가 지정한 유일한 ‘메르스 거점치료병원’이다. 이곳에서는 현재 의심환자 7명과 확진 환자 12명을 치료하기 위해 30여명의 의사와 80여명의 간호사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신형식 국립의료원 메르스대책반 진료총괄부장은 “31일째 환자들의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며 “의료진의 심신 피로는 굉장히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혼란 속 빛난 공공의료원

이달 5일 메르스 거점치료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병원은 기존 환자들을 모두 다른 병원으로 이송ㆍ퇴원 시켰다. 수익을 포기하고 메르스 치료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노동환 국립의료원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공공의료기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치”라고 말했다.

메르스 환자를 격리한 5층 중환자실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2인 1조가 돼 보호구를 착용해야 한다. 보호구를 완벽히 착용하기 위해 서로를 ‘감독’하는 것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메르스에 감염된 의료진은 한명도 없다.

환자들이 있는 병실 앞은 2중 유리벽으로 차폐돼 있고, 중환자실 내부에서 의료진은 바닥에 설치된 노란 선을 따라서만 움직인다. 의료진의 이동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병실에서 나올 땐 2중 장갑과 덧신 중 환자와 접촉한 것을 벗어 폐기한다. 중환자실을 나오기 전에는 ‘클린룸’에서 소독 절차를 거친다.

김은희 국립의료원 간호사는 “음압병실에 들어갈 때 기본적으로 D등급 보호구를 입고, 환자를 진료할 때는 에어로졸 노출로부터 안전한 C등급 보호구를 착용한다”고 말했다. D등급 보호복은 고글, 마스크를 따로 착용하는데 손으로 고글을 만지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C등급은 완전 밀폐형 보호구로 전동식호흡장치(PAPR)와 안면 보호구를 갖추고 있어 훨씬 안전하다.

국립의료원은 현재 5층 3개 6ㆍ7층 17개, 8ㆍ9층 5개 등 총 25개의 음압병실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다. 음압병실은 기압 차를 이용해 공기가 항상 병실 안쪽으로 흐르도록 한 것으로, 바이러스의 외부 유출을 방지한다. 국립의료원은 정문 쪽에 36㎡(12평) 규모의 음압텐트 3동을 설치해 추가 환자에 대비하고 있다.

메르스 대응을 총괄하는 신형식 부장과 의료진들은 지난 1월 해외긴급구호 의료진으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4주간 에볼라 진료에 나선 경험이 있다. 국립의료원은 또 전세계적 감염병의 유행에 대비해 병원 내 시뮬레이션센터를 설치, 의료진들에게 보호구 착용법, 감염병 환자 간호 등을 훈련 시켰다. 결국 공공의료원으로서 ‘수익’을 위한 진료에만 치중하지 않고 감염병 예방과 국제의료구호활동에 나선 경험이 메르스 사태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빅5’로 평가받는 삼성서울병원의 부실 대응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대목이다.

공공의료원 지원 강화돼야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감염병 치료와 같은 ‘궂은 일’을 떠 맡는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병상(2011년 기준) 중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77%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이 지난 10~11일 21곳의 지방의료원에서 실시한 현장실태 조사에 따르면 음압병상이 있는 곳은 14곳(67%)에 불과했고, 메르스 확진환자를 치료할 시설과 장비를 갖춘 곳은 6곳(29%)뿐이었다. 보건노조는 “메르스와 같은 국가적 규모의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거점공공병원이 취약하다”며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강화ㆍ지원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국립의료원의 한 의사는 “민간 병원은 시장 원리에 따라 수요가 없는 질병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지만, 공공의료기관은 만약의 사태에 항상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의료 쇼핑’도 문제이지만, 수익만 추구하는 병원들이 이른바 ‘돈 안 되는’ 환자들을 받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 떠돌 수 밖에 없는 것도 감염병 확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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