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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건설사들 기술력까지 한국 턱밑 추격… 무서운 황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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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건설사들 기술력까지 한국 턱밑 추격… 무서운 황사 바람

입력
2014.11.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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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코리아 중동신화 판박이… 아프리카 시장 싹쓸이 경험 발판

"건물 수주 땐 임대까지 해결" 유럽업체와 협력 '한국 따돌리기'

20일(현지시각) 차오 바오강(Cao Baogang) 중국 철도건설유한공사(CRCC) 부회장과 이드리스 아우두 우마르(Idris Audu Umar) 나이지리아 교통부 장관이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연해 철도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악수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서부 라고스부터 동부 카라바까지 총 1,402km를 철도로 잇는 이 사업의 계약금은 119억7,000만달러(약 13조3,000억원)로 단일 계약으로는 중국 해외 수주 중 최대 금액이다. 아부자(나이지리아)=신화통신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각) 차오 바오강(Cao Baogang) 중국 철도건설유한공사(CRCC) 부회장과 이드리스 아우두 우마르(Idris Audu Umar) 나이지리아 교통부 장관이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연해 철도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악수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서부 라고스부터 동부 카라바까지 총 1,402km를 철도로 잇는 이 사업의 계약금은 119억7,000만달러(약 13조3,000억원)로 단일 계약으로는 중국 해외 수주 중 최대 금액이다. 아부자(나이지리아)=신화통신 연합뉴스

최근 중동지역에서 발전소 시공사 경쟁에 뛰어들었던 모 건설사 팀장은 중국 건설사들의 공격적인 수주를 지켜보며 끔찍한 사막의 모래폭풍을 떠올렸다고 한다. “중국 회사가 입찰에 들어오면 기술 평가 비중이 높은 경우가 아닐 경우 아예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 경쟁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그는 과거 1970년대 우리가 싼 인건비를 앞세워서 중동 건설을 따내던 시절, 일본과 유럽 회사들이 두 손을 들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세계 건설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갈수록 위력을 더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전방위적 지원 사격을 해주는 데다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고도화된 수주 전략까지 갖춰가는 양상이다. 국내 업체들의 텃밭이었던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으로 공세를 확대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02년 세계시장 점유율이 6.1%(이하 미국 건설 전문지 ENR 집계) 수준이었던 중국 건설사들은 2013년에는 14.5%를 기록, 수년째 스페인과 선두를 다툴 만큼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서 있다. 점유율로만 치면 한국(7.8%) 업체들의 두 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아프리카에서의 압도적인 점유율에 힘입은 바가 컸다. 중국 업체들의 아프리카 지역의 수주액은 10년 사이 270배가 늘었고 2013년 점유율은 48.7%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2002년부터 5년 간 아프리카에 440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자금을 지원한 결과였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의 철도 사업 수주를 싹쓸이하고 있다. 중국기업들은 작년 케냐와 에티오피아 등의 철도 건설권을 잇달아 따낸 데 이어 20일(현지시각)에는 계약금 119억7,000만달러(약 13조3,000억원)에 달하는 나이지리아 연해 철도사업 계약을 수주했다. 이 계약은 지난 5월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나이지리아를 방문했을 때 따낸 사업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으로 아프리카 건설시장을 차지한 중국 기업들이 이를 발판으로 중동, 아시아, 남미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화교가 많은 동남아 지역이 제1 타깃이다. 정부의 세제와 금융지원이 이뤄지면서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은 무서운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대우건설 말레이시아지사 이기순 부장은 “중국 건설사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경쟁사보다 15% 이상 낮은 가격을 써내는 등 아프리카에서 위세를 떨쳤던 저가수주를 동남아에서도 이어가고 있다”며 “아직 초고층은 힘들지만 중급 빌딩 건설은 중국 업체들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말레이시아 포시즌스 호텔, W호텔 등 고급 빌딩 건축 수주에서 중국기업들이 잇따라 국내 건설사들을 따돌렸다. 단순한 토목 공사뿐 아니라 8월에 이뤄진 말레이시아의 대규모 종합석유화학단지(RAPID) 구축 사업 입찰에서도 중국 건설사가 국내 기업을 따돌리고 낙찰을 따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중국 업체의 기술력을 인정하는 말레이시아 원청 회사들이 고층건물 입찰 때 일본과 한국 업체보다 중국 건설사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국내 업체들의 점유율이 25%에 달해 사실상 안방이라 여겨졌던 중동 지역에서도 공사 계약들이 줄줄이 중국 업체에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22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업체 아람코가 발주한 ‘마스터 가스시스템(MGS) 확장1단계 프로젝트’ 중 가스압축시설 패키지를 중국 국영기업인 셉코(Sepco)사가 13억 달러(약 1조4,500억원)에 수주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건설사들은 수주를 따내기 위해 중국인들의 막강한 구매력, 즉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내세우기도 한다. 더불어 건물 수주를 할 경우 몇 개 층은 자기들이 알아서 임대를 해결하겠다는 식의 배포 있는 영업력도 발휘한다. 무작정 낮은 가격을 앞세우기보다 적절히 원청 업체와 줄다리기를 하며 협상을 끌어간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들을 따돌리기 위해 ‘적과의 동침’을 불사하는 사례도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중국과 함께 최근 유럽 건설사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들은 많은 경우 가격 경쟁력을 가진 중국 업체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며 “중국 업체는 유럽업체와 기술력을 공유하고, 유럽업체는 중국 건설사의 저렴한 인건비 혜택을 누린다”고 설명했다.

국내 건설사들이 그나마 강점을 가졌던 기술 프리미엄도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9월 입찰이 진행된 12억 달러 규모의 나미비아 1,050㎽급 가스 발전 플랜트 사업의 승자는 중국 상해전력이었다. 해당 사업의 상대는 일본 미쓰비시, 히타치, 그리고 국내 굴지의 업체로 이뤄진 대형 컨소시엄. 업계 한 관계자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을 주로 수주했던 중국이 기술력을 키워 복잡한 플랜트 사업마저 챙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0년간 한국 업체의 강력한 무기였던 가격 경쟁력은 중국에 밀리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전략이 됐다”며 “미국 등 선진업체와 같은 높은 이익률을 낼 수 있는 방향으로의 도약을 위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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