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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두 달 앞두고…" 꿈 많던 예비신부도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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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두 달 앞두고…" 꿈 많던 예비신부도 참변

입력
2015.01.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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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 깊었던 20대 웹디자이너, 홀로 두 자녀 키운 60대도 변 당해

집 잃은 주민들 인근 학교로 대피, 차가운 바닥서 대부분 잠 못 이뤄

의정부 아파트 화재로 갈 곳을 잃은 피해 주민들이 11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금오동 경의초등 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 모여 있다. 의정부=뉴시스
의정부 아파트 화재로 갈 곳을 잃은 피해 주민들이 11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금오동 경의초등 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 모여 있다. 의정부=뉴시스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를 덮친 화마는 효성이 깊었던 딸, 결혼을 준비하던 예비신부, 홀로 두 자녀를 억척스럽게 키워낸 어머니를 가족들 품에서 앗아갔다.

화재로 숨진 한경진(26ㆍ여)씨는 웹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중 지난해 부모와 살던 경기 양주 집에서 독립, 화재가 난 아파트 605호에 입주했다. “사고 전날에도 점심을 함께 먹었다”는 한씨의 어머니 궁선영(48)씨는 “‘저녁에 아빠와 영화 보라’며 티켓까지 사준 친구 같은 딸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10일 빈소가 차려진 의정부 추병원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궁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놓치지 않던 고마운 딸이었다”며 “사고 전날도 일하다 늦게 잠들어 깨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빈소를 찾은 고교 동창 박경택(27)씨는 “대학을 다니면서 줄곧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친구였다”, 김준엽(27)씨는 “친구 생일을 잊지 않고 챙기는 다정다감한 친구였다”고 한씨의 생전 모습을 기억했다.

두 달 후 새 신부가 될 꿈에 부풀어 있던 윤효정(29ㆍ여)씨도 희생돼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11일 경기도 의정부 백병원에 마련된 임시 빈소에서 만난 윤씨의 삼촌은 “화상이 너무 심해 부모에겐 시신을 차마 보여주지도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야 할 때 이렇게 참혹한 사고를 당했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윤씨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화상 정도가 심해 사고 당일 오후 늦게야 신원이 파악됐다. 한씨와 윤씨처럼 이번 화재 피해 사상자 128명 가운데 상당수는 20대(50명)와 30대(44명)였다. 불이 난 건물에는 원룸이나 투룸에 혼자 사는 직장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906호 주민 안현순(68ㆍ여)씨는 홀로 거주하다 변을 당했다. 11일 오후 안씨의 시신이 안치된 의정부의료원에는 황망한 표정을 한 유족, 지인 등이 힘 없이 앉아 있었다. 안씨와 같은 교회를 다녔다는 A씨는 “젊어서 남편을 잃고, 택시운전까지 할 정도로 억척같이 산 분”이라며 “성격도 야무지고 똑똑해서 아들, 딸도 잘 키워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관계당국의 사고 처리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윤씨의 숙모는 “조카가 어쩌다가 변을 당했는지 아무도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조카의 약혼자가 경찰서와 시청을 찾아 다니면서 상황을 묻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씨의 어머니는 “철저한 원인 규명이 하루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까지 사망자는 4명. 그러나 중상자도 9명이나 돼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관계당국은 보고 있다. 중상자들은 의정부성모병원, 서울 한강성심병원과 구로성심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편 화마로 집을 잃은 주민들을 위해 경의초등학교 강당에 대피소가 마련됐지만 대부분 잠도 이루지 못했다. 원모(43ㆍ여)씨는 “단열 매트가 깔리긴 했지만 겨울이라 나이 든 사람이 자기에는 너무 춥다”고 호소했고, 전모(25ㆍ여)씨는 “텐트가 있어 잠자리는 괜찮았지만 씻는 곳이 없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의정부시는 구호물품 364세트와 텐트 70여동을 이재민들에게 제공해 거처를 마련했으며 시청 공무원, 자원봉사자 등 43명이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필요한 민원 업무를 돕고 있다. 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간이 진단 등 심리치료도 지원하고 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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