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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무슬림? No! 히잡으로 개성 찾는 新무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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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무슬림? No! 히잡으로 개성 찾는 新무슬림

입력
2016.10.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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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의상 전문 브랜드인 잘리아 직원들이 올해 출시된 이슬람식 드레스 카프탄과 히잡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잘리아 제공
무슬림 의상 전문 브랜드인 잘리아 직원들이 올해 출시된 이슬람식 드레스 카프탄과 히잡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잘리아 제공

“요즘 히잡이요? 공부 없인 못 써요.” 지난달 25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시티센터(KLCC)에서 친구들과 주말 쇼핑을 즐기던 아멜리아 하니 강(24ㆍ여)씨는 ‘히잡을 쓰는 특별한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눈썹을 곱게 다듬고 눈에 서클렌즈를 껴 한껏 멋을 낸 그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히잡을 쓰는 건 너무 ‘올드’해 우리 세대에 통하지 않는다”며 “유튜브 영상을 보며 따라 하거나 친구들끼리 독특한 방법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성의 머리카락 등을 가리는 히잡에 과거 어느 때보다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비이슬람권에서 여성 차별적 도구로 비판 받아온 히잡은 최근 잇따른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로 공포의 대상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20~30대 무슬림 여성들은 하나같이 “히잡 또한 자기표현의 수단 중 하나”라고 당당히 외치며 이슬람 의상을 패션으로서 ‘즐기고’ 있었다. 수백 가지 방식으로 히잡을 소화하는 인터넷 스타들을 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이들은 하나같이 “히잡을 착용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어떻게 쓰는지 까지 모두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고 입을 모았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20대 여성들은 “스스로를 꾸미고 개성을 나타내는 데 히잡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쿠알라룸푸르=김정원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20대 여성들은 “스스로를 꾸미고 개성을 나타내는 데 히잡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쿠알라룸푸르=김정원기자

“종교와 패션의 균형 찾아 행복”

쿠알라룸푸르 도심의 KLCC, 파빌리온 등 대형 쇼핑센터에서는 히잡을 머리 위로 감아 올려 목을 훤히 드러낸 여성들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얼굴과 손을 제외한 신체를 가리는 것이 관례지만 중동 부호들이 쇼핑을 위해 자주 찾는 도시이자 2012년 기준 2,5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 관광 대국답게 히잡 패션도 다양했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에메랄드빛, 연분홍색 등 파스텔 톤의 히잡은 물론, 그러데이션, 일러스트가 새겨진 히잡과 최신 유행의 옷으로 스스로를 꾸민 여성들이 삼삼오오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2030 젊은 이슬람 여성들에게 히잡은 이제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패션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여행차 방문했다는 대학생 완다(23)는 “히잡은 단순한 모양 덕분에 오히려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며 “개성을 드러내는 데 히잡만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2008년부터 패션ㆍ뷰티 팁을 공유해 온 유명 블로거 아이나 잘랄(32) 또한 “20년 동안 히잡을 착용했는데 지금처럼 종교적 신념과 패션이 균형을 이뤘던 적은 없었다”며 “(자신을 비롯한)수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행복해한다”고 밝혔다.

파격적 패션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슬람 가정에서도 스스로를 가꾸는 딸들에 간섭하는 일이 드물다. 기업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누르파틴 이나니 아즈난(24)은 “일곱 살 때 부모님이 히잡 착용을 권유하긴 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진 원하는 날에만 썼다”며 “이후에도 히잡을 어떤 모습으로 쓰는지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무슬림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원칙만 지킨다면 다양한 스타일을 존중함으로써 가정 내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부모 세대의 생각이다.

히잡이 젊은 세대들의 ‘즐길 거리’가 되면서 무슬림 의류 시장은 날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3년 전세계 무슬림은 전년 대비 약 10% 성장한 2,660억달러(약294조6,000억원)를 의류 구매에 지출했다. 2019년 시장 규모는 4,880억달러(약540조5,000억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아시아 의류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업체들까지 젊은 무슬림을 공략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동남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잘로라는 자체 브랜드 잘리아를 통해 하리라야 축제(라마단 종료를 알리는 무슬림 최대 명절)용 화려한 이슬람식 드레스부터 실용적인 일상복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2008년 설립된 밈피키타는 전문직 여성을 겨냥, 차분하고 우아한 제품을 내세워 지난해 영국 진출에도 성공했다. 글로벌 기업 중에서는 2014년 디케이엔와이가 라마단 기간용 옷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유니클로, 돌체앤가바나가 히잡 등 무슬림 의상을 출시했으며 지난해 스웨덴 에이치엔앰도 최초로 히잡 쓴 모델을 등장시켜 화제를 모았다.

말레이시아 대표 히자비스타 비비 유소프. 비비 유소프 인스타그램 캡처
말레이시아 대표 히자비스타 비비 유소프. 비비 유소프 인스타그램 캡처

‘히자비스타’ 열풍…기회 잡는 여성들

히잡이 패션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데는 ‘히자비스타’(히잡과 패셔니스타의 합성어)들의 역할도 컸다. ‘히자비’ 또는 ‘히잡스터’(히잡과 힙스터의 합성어)로도 불리는 이들은 블로그나 유튜브,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패션ㆍ뷰티ㆍ음식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공유하며 새로운 히잡 연출법과 히잡용 메이크업을 제안한다.

일부 히자비스타들의 인기는 웬만한 연예인을 능가한다. 화장법을 주로 공유하는 아샬리 아흐마드는 76만여명, 히잡 스타일링 등을 제안하는 비비 유소프는 74만명 이상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유소프는 특히 2010년과 2014년 차례로 온라인 쇼핑몰 패션 발렛과 히잡 브랜드 덕을 론칭해 패션 사업가로도 성공했다. 그 외에도 미라 필자 등 많은 여성들이 히자비스타로 등장한 후 의류 유통,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며 새로운 ‘여성 시대’를 만들고 있다.

히잡으로 다른 신체 부위를 가리는 대신 드러낸 얼굴은 돋보이게 하겠다는 취지의 히잡 메이크업은 무슬림 여성뿐 아니라 비이슬람 여성도 사로잡고 있다. 국내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니(본명 박혜민)는 유튜브에 금빛 펄과 강렬한 분홍 아이섀도를 활용한 히잡 메이크업 동영상을 게재해 135만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에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의 영상을 포함, 10만개 이상의 히잡용 메이크업 동영상이 게시돼 있다.

물론 젊다고 해서 히자비스타의 파격을 마냥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목을 드러낸 터번식 히잡 착용으로 영미권 국가에서 ‘패션 아이콘’이 된 말레이시아 싱어송라이터 유나에 대한 상반된 시선이 대표적이다. 쿠알라룸푸르 시내 대형 화장품 전문점에서 만난 파티하 아티라(22)는 "유나의 스타일이 중동 일부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말레이시아식 율법에서 벗어나 있어) 개인적으로는 따라 하지 않겠지만 관점이 다를 뿐 허용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부르키니 금지 논란엔 “존중해달라”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여전히 히잡을 향한 비이슬람권의 인식은 ‘여성 억압의 도구’ 정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에서는 8월 칸, 빌뇌브 루베 등 30여개 지역이 해변에서 이슬람식 수영복 부르키니에 대해 금지 조치를 취했다. 히잡은 2004년부터 이미 모든 공립학교에서 세속주의를 이유로 퇴출됐다. 프랑스의 부르키니 논란은 8월 말 최고행정재판소(콩세이데타)가 금지 조치 무효화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락됐으나,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로 논쟁이 확산되는 실정이다.

일반 무슬림 여성들은 이에 대해 이해와 존중을 촉구했다. 패션 블로거 겸 회사원인 일리 아리핀(29)은 “승복이나 수녀복을 위협적이라 느끼는 사람은 없다”며 “이슬람교 역시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선(善)을 가르치는 종교라는 점을 이해하면 히잡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유명 블로거 사브리나 눌 아즈미(32) 역시 “(금지 조치는) 공평하지 않다”며 “부르키니와 똑같이 생긴 다이버의 수영복도 금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전문가들 또한 히잡이 여성 차별의 의미를 갖는다 해도 외부 개입으로 이를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사라 실베스트리 영국 런던시티대학교 종교정치학 교수는 “히잡 금지조치는 오히려 무슬림들의 소외감을 증폭시켜 극단주의화할 가능성을 키운다”며 “무슬림 여성들이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폭넓은 재량권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고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쿠알라룸푸르=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파빌리온 내 히잡 매장에서 쇼핑하는 무슬림 관광객. 쿠알라룸푸르=김정원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파빌리온 내 히잡 매장에서 쇼핑하는 무슬림 관광객. 쿠알라룸푸르=김정원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잘란 마지드 인디아 거리의 히잡 상인. 쿠알라룸푸르=김정원기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잘란 마지드 인디아 거리의 히잡 상인. 쿠알라룸푸르=김정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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