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면 인간 조건에 대한 모독인가

알림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면 인간 조건에 대한 모독인가

입력
2014.11.28 15:18
0 0

피터 싱어 등 지음, 유정민 옮김

이숲ㆍ288쪽ㆍ1만8,000원

윤리학자ㆍ철학자ㆍ동물행동학자 3인

모든 생명체에 평등한 권리 있나

역사, 철학 등 관점서 입체적 성찰

조류 인플루엔자가 돌면 닭과 오리 수백 마리를 산 채로 매장한다. 가족처럼 지내던 반려동물도 병 들면 버린다. 닭과 돼지 등 식용 가축의 우리는 강제수용소나 다름없다. 실험실에서는 매일 실험용 동물이 죽는다. 이때 동물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다뤄지는 존재일 뿐이다. 가끔 죄책감이 들긴 해도 그것 때문에 생활이나 사고 방식을 바꾼다면 유별나게 군다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사람도 사람 대접 받고 살기 힘든 마당에 동물에게 신경을 쓰라는 요구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동물의 권리’는 그런 생각과 태도가 어디서 비롯됐으며 왜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종합적 고찰이고 제안이다. 프랑스 기자 겸 작가 카린 루 마티뇽이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동물의 권리를 옹호해온 세계적인 학자 세 명과 각각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생명윤리학자이면서 철학자로 동물해방운동의 창시자인 피터 싱어, 철학자로는 드물게 철학적 성찰을 동물 문제까지 확대한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인간과 동물의 본성을 비교하는 연구 끝에 이 둘을 격리하고 차별하는 사고를 반대하는 데 이른 동물행동학자 보리스 시륄닉이 카리뇽과 1대 1로 대화를 나눴다. 동물의 문제를 다루는 책들이 공장식 축산의 살풍경을 고발하는 등 주로 특정 이슈에 맞춰 단편적 접근을 하는 데 비해 이 책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역사, 철학, 행동학, 인류학적 관점에서 폭넓게 파헤침으로써 본격적이고 입체적인 조망을 선사한다.

동물의 권리가 왜 중요한가. 시륄닉은 동물도 의식과 감정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해서 인간의 조건을 경시하거나 모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둘이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그는 인간의 도덕적 진화 과정과 동물행동학이 밝혀낸 동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2009년 9월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 법무부 앞에서 동물복지 운동가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범죄단체 구성을 처벌하는 형법 278a 항을 적용한 이 사건으로 국제적 비난을 사면서도 동물보호운동이 동물을 이용하는 의류ㆍ식품ㆍ제약산업을 공격하고 있다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2009년 9월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 법무부 앞에서 동물복지 운동가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범죄단체 구성을 처벌하는 형법 278a 항을 적용한 이 사건으로 국제적 비난을 사면서도 동물보호운동이 동물을 이용하는 의류ㆍ식품ㆍ제약산업을 공격하고 있다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마티뇽의 질문에 답한 세 학자 중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이다. 동물해방론은 동물 보호나 동물 복지운동과 다르다. 동물복지론은 동물의 종속 상태를 연장하고 확고히 할 뿐이라고 본다. 노예제 폐지론과 같은 맥락이다. 필요에 따라 동물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이유 없이 학대하면 안 된다는 정도를 넘어,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이용할 권리가 있느냐고 묻는 게 동물해방론이다. 싱어는 “동물은 인간의 재량에 달린 존재가 아니며 인간의 삶만이 고귀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소비 생활을 위해 동물에게 가하는 고통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동물의 권리는 인간부터 모기까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동일하고 평등한 권리”라는 싱어의 주장과 달리 다윈주의자인 퐁트네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지각이 있는 모든 존재를 도덕적 법적으로 똑같이 다룰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고유성’을 강조하며 동물과 인간을 분리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진화의 사다리가 만들어낸 서열이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새와 고래에게 똑 같은 권리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평등이냐 서열에 따른 차별이냐의 방법론적 차이는 있지만,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동물의 권리를 부정하는 생각의 뿌리를 이 책은 종교와 근대 철학에서 찾는다. 기독교는 인간의 동물 지배를 정당화했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이성주의는 “동물은 의식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동물은 도덕적으로 수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의무도 권리도 없다“고 선언한 칸트의 도덕철학도 있다. 오늘날 엄청난 규모의 축산업과 육류산업의 이해 관계는 동물의 권리를 더욱 멀리 추방했다.

세 학자들과 대담을 하면서 마티뇽이 확인한 사실은 “인간과 동물 사이 관계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쓸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인간을 기준으로 동물을 파악하기보다 동물의 개별성과 개체성을 기준으로 그들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동물의 권리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이 과제라고 결론을 내린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