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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망 절실한데…치매 독거노인에 도움 못 주는 성년후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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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망 절실한데…치매 독거노인에 도움 못 주는 성년후견제

입력
2017.05.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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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ㆍ고령자 위해 2013년 도입

가족 없는 노인 도움 시급하지만

전문후견인에 매달 수십만원

보수 지급 여건 안되면 언감생심

법원 “빈곤 노인 맡아달라” 청탁

전문가 무보수 후견 외 대책 없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A(79)씨는 30년 전 이혼한 후 경기 부천시의 반지하 원룸에서 홀로 살아왔다. 한때 택시 운전대를 잡고 생계를 유지했지만, 4년 전 치매 증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방치됐다. 현재 A씨의 유일한 혈육은 노환을 앓고 있는 가난한 형. 재산은 전세보증금 5,000만원이 전부다. 요양병원 입원비와 밀린 치료비 통신비를 정산하고, 원룸도 비워줘야 하는 독거노인 A씨는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가족해체 현상이 심화하고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고독사의 공포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고령과 질병 등으로 생활능력이 떨어진 이들을 보호하는 성년후견제도가 2013년 마련됐지만 어디까지나 돌봐 줄 친족이 있거나, 후견을 받는 사람이 재산이 있는 경우에만 안전판 역할을 한다. 정작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은 제도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무연고 치매노인과 독거노인 등의 후견을 일부 전문가후견인(법무사 변호사 등)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무보수에 떠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A씨가 그렇다.

A씨 친형은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에 자신이 A씨 후견인이 되겠다고 후견인 선임 심판을 청구했다. 법원은 그러나 고령인데다 A씨 전세보증금에 대한 재산권을 주장하는 형 대신 전문가후견인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A씨 후견을 맡은 법무사는 “판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후견이 필요한데 재산이 없어 보수를 줄 수 없다. 무료로 맡아 달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성년후견지원본부 등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이 현재까지 이처럼 ‘무보수 후견’을 떠맡긴 사건은 40건 안팎으로 추산된다.

법원이 무료 후견 ‘청탁’에 나서는데도 속사정은 있다. 현행 성년후견제도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족이 후견인이 돼 무보수로 후견 업무를 하거나 ▦전문가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 규모와 업무 난이도 등에 따라 매달 30만~100만원씩을 법원의 허가를 받고 피후견인 재산으로부터 보수로 지급받도록 돼있다. 여건이 되는 친족이나 재산이 없어 방치된 관내 치매노인 등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등이 후견인 선임 청구를 해 올 때, 법원은 ‘무보수 청탁’ 말고는 전문가후견인에게 이들의 후견을 맡길 방법이 전무하다는 얘기다.

빈곤 노인 3명의 무보수 후견 청탁을 해봤다는 한 가정법원 판사는 “무료로 업무를 떠맡은 후견인에게는 쓴소리 하기 어려워 법원의 감독 역할이 약화될까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법원은 전문가후견인에게 정기적으로 업무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해 이들이 후견인의 신상 및 재산 관리를 적절하게 하는지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후견이 필요한 고령 인구가 크게 느는 것을 감안하면 이처럼 일부 전문가후견인의 선의에 기대는 현행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후견 사건은 2014년 768건에서 2015년 1,049건, 2016년 1,299건으로 폭증하고 있다. 2명이던 후견 업무 담당 법관도 올 2월 3명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후견 업무 비용을 지원해주는 공공후견지원제도를 확대하라고 입을 모은다. 현행 공공후견지원제도는 성년의 발달장애인에 한해서만 후견인 보수를 국고로 지원해주고 있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찍부터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은 치매노인과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 순서로 공공후견 지원을 확대해왔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됐다”고 지적했다. 배광열 변호사(사단법인 온율ㆍ전 치매후견센터 부센터장)도 “현재 발달장애를 제외한 치매환자나 정신장애인의 후견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전무하다”라며 “후견단체에서 민간의 자원봉사자를 활용해 관련 교육을 이수하게 하고 적절한 후견 업무에 연결시킨 뒤 활동보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의 민관협력공공후견제도가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국선변호사처럼 국선후견인제도가 필요하다는 법원 내부 목소리도 있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법원에 탄탄한 전문가후견인 인력풀이 구성돼 있는 만큼 이들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만 만들어주면 피후견인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전문가후견인 중 일부를 국선후견인으로 지정하면 소외된 이들의 후견을 맡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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