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은영 기자

등록 : 2017.11.25 04:40
수정 : 2017.12.01 14:32

[나를 키운 8할] 장나라 "예닐곱살에 본 아빠의 연극... 그 날이 아직도 생생"

<37> 배우 장나라의 '아버지와 연극'

등록 : 2017.11.25 04:40
수정 : 2017.12.01 14:32

장나라는 “어릴 때부터 보던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며 “여성국극에서 남자 역할을 꼭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라원문화 제공

'고도를 기다리며' 숨죽여 보곤

"감동적이야" 잊지 못할 느낌

어린 소녀에게 무대는 꿈으로

롤모델 아버지를 이기고 싶어

연예계 일찍 데뷔하려 전전

돌고돌아 어느덧 30대 중후반

아버지처럼 무대에 한번 서고파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예닐곱 살의 내가 넋을 놓고 연극에 심취했던 때가. 어른들이 보기엔 고도의 집중력으로 연극을 감상하는 꼬마의 모습이 마냥 귀여울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제법 진지했다.

1980년대 연극배우로 활동했던 아버지(주호성) 덕분에 나는 꽤 일찍부터 공연을 접했다. 아버지는 공연이 있는 날이면 내 손을 잡고 서울 종로구 대학로로 향했다.

아버지가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치는 모습은 무척이나 근사했다. 어렸지만 배우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에 감탄했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숨죽이고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아버지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와 '세일즈맨의 죽음' '유토피아를 먹고 잠들다' 등 지금 봐도 난해한 작품에 자주 출연하셨다. 특히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 '감동적이다'라고 느꼈던 걸 떠올리면 지금은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건 어린 소녀에게 무대는 꿈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내 꿈은 본격화 됐다. 우연한 기회에 텔레비전 CF를 찍고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가 더욱 단단해졌다. 아버지는 학업을 모두 마친 뒤에 데뷔를 해도 늦지 않다고 말씀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여러 연예기획사를 돌며 오디션을 봤다. 가수와 배우 모두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오디션에 참가했다. 빨리 연예계에 데뷔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여러 연예기획사를 전전하면서 배우의 꿈은 멀어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았다. 2001년 1집 앨범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를 발매하며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 내 나이 만으로 스무 살이었다.

왜 그렇게 일찍 데뷔하려고 했는지 이해를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배우로서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내게 롤모델이 됐다. 심지어는 아버지를 이기고 싶었다.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아버지를 능가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었다.

최근 장나라는 KBS드라마 ‘고백부부’에서 현재의 38세 가정주부와 과거의 스무 살 대학생 마진주를 연기해 호평 받았다. 라원문화 제공

가수로 데뷔한 해 MBC 시트콤 '논스톱'을 시작으로 SBS 드라마 '명랑 소녀 성공기'(2002), 영화 '오! 해피데이'(2003)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다 2004년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 무대를 넓혔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중국 활동은 시작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아버지와 함께 중국에 도착한 날부터 몸이 아팠다. 집을 처음 떠나 타지에서 지내는 게 어찌 좋기만 했겠는가. 그렇다고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혼자 공부하는 유학생보다 나았을 테니까. 2006년 중국 드라마 '띠아오만 공주'의 성공은 그간의 고생을 씻어주었다. 자신이 수나라 공주라는 사실을 모르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순백지련'(2007), '장미저택'(2010), '띠아오만 어의'(2011) 등으로 중국에서 배우 커리어를 꾸준히 쌓았다. 고향이 그리워 힘든 적도 많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인복이 많은 편이라 좋은 분들과 작업하며 따뜻한 정을 많이 느꼈다. 나를 더 단단하고 크게 발전시키고자 했을 아버지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내 인생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성취감도 많이 떨어졌었다. 하루에 7, 8개의 스케줄을 소화하는 바쁜 일정으로 장염과 식도염을 달고 살았다. 너무 피로한 일상은 간 건강을 해쳤고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몰고 갔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대중의 뜨거운 사랑에 응답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연예인의 숙명이니까.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피폐해져 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이라서 더 힘들지 않았나 싶다.

장나라(왼쪽)는 KBS 드라마 ‘고백부부’에서 손호준과 부부 호흡을 맞췄다. 방송화면 캡처

얼마 전 끝난 KBS드라마 '고백부부'에 출연하면서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드라마 내용이 이혼 위기의 38세 동갑내기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18년 전 스무 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좋은 기억들이 많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20대였다. 그때가 한 번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이 행복하다. 차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었던 그 때보다 사람들과 모여 커피 마시면서 웃으며 일하는 지금이 굉장히 행복하다. 이제야 비로소 축복받은 느낌이 든다.

요즘에는 연기에 대한 진정한 재미와 성취감이 커지고 있다. 딱히 잘하는 게 없다 보니 연기를 할 때 비로소 '내가 가치 있는 인간이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다만 아쉬운 건 점점 나이에 대한 제약이 많다는 걸 느낄 때다. 30대 중 후반이 되니 역할이 제한적이다. 그러면서 다시 연극이나 뮤지컬 등 무대 공연이 그리워졌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무대로 가보고 싶다.

특히 '남자 역할'을 해보는 게 소원이다. 여성국극에서 남자를 표현하는 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제갈공명' 같은 역할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영화 '콘스탄틴'에서 커다란 날개를 달고 타락한 천사 가브리엘로 나오는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는 그녀의 연기에 반해 '콘스탄틴'을 3번이나 봤다.

변신을 시도하겠다는 게 아니다. 모든 배우들이 갈망하는 건 다양한 역할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직까지 귀여운 모습만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 매력을 지닌 연기를 한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더 늦기 전에 무대 연기를 통해 관객들을 만날 날을 기다려 본다.

<배우 장나라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리=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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