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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백인우월주의 묵인에 분노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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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백인우월주의 묵인에 분노한 미국

입력
2017.08.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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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 심취 인종주의자 범행을

‘여러 편’ 폭력 탓으로 돌려

‘측근들 조언 무시’ 드러나

“대선에서 빚져”… 태생적 한계

백악관, 후폭풍 거세지자 해명

미국 시민들이 13일 백악관 인근 펜실베니아 거리에 모여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폭력 시위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 시민들이 13일 백악관 인근 펜실베니아 거리에 모여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폭력 시위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그(트럼프)가 했던 대선 유세를 보라. 백인우월주의자들, 국수주의 단체들의 비위를 맞춘 것을 보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마이클 사이너(민주당) 시장이 13일(현지시간) CNN ‘스테이트 오브 유니언’에 출연해 한 말이다. 사이너 시장이 이끄는 샬러츠빌에서는 전날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저지른 폭력 사태로 3명이 숨졌다. 그는 대선 당시 멕시코 이주민들을 범죄 원흉으로 묘사하는 등 인종 다양성을 부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극의 책임을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내 테러리즘과 백인우월주의, 두 단어를 계속 언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주의를 규탄하지 않고 샬러츠빌 폭력 시위의 원인을 “‘여러 편(many sides)’에서 나타난 증오와 편견, 폭력” 탓으로 돌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인종차별을 묵인하는 듯한 대통령의 인식이 확인되면서 분노가 미 전역으로 번질 조짐이다.

이번 사태는 누가 봐도 백인우월주의가 부른 참극이었다. 흑인 민권단체 시위대를 향해 차량을 돌진한 20세 범인 제임스 앨릭스 필즈 주니어는 고교시절부터 나치즘에 심취해 있었다. 그를 가르친 교사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필즈는 독일군과 (나치) SS친위대에 푹 빠진 듯 보였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으로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발언(CNN)” 등 트럼프를 질타하는 반응이 압도적인 이유이다.

심상치 않은 여론을 감지한 백악관은 트럼프를 대신해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대통령은 폭력과 편견, 증오를 비난했다. 비난에는 백인우월주의자와 (우월주의 조직) 큐클럭스클랜(KKK), 신나치주의자 및 모든 극단주의 단체들이 포함된다”고 해명했다.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을 위해 콜롬비아를 방문 중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우리는 증오와 폭력을 가장 강력한 말로 규탄한다”고 했고,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샬러츠빌 사태를 “명백한 국내 테러”로 규정했다.

사안의 파급력을 감안해 여당인 공화당 인사들이 비판에 더욱 열을 올리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나 최근 해임된 앤서니 스카라무치 전 백악관 공보국장조차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공개 입장을 밝힐 정도다.

미 언론은 트럼프가 왜 극우주의 비판을 꺼려했는지, 배경을 탐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단 트럼프가 인종주의를 원인 제공자로 지목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 누락에 무게가 실린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입장을 밝히기 전 폭력을 유발한 백인민족주의를 비난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조언을 여러 차례 묵살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의중이 반영됐기 때문인지 이번 사태를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인권수사에 착수하겠다는 법무부 방침은 사건 당일 밤늦게야 발표됐다.

트럼프가 태생적으로 인종차별과 등을 돌릴 수 없는 관계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폭력 시위에 참가한 KKK의 데이비드 듀크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을 되찾아 주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에게 투표했다”고 과시했다. 대선에서 백인 저소득층 등의 경제적 불안감을 파고 들어 정치적 승리를 쟁취한 트럼프가 이들을 버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흑인 인권단체들이 사태 직후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해임을 요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배넌이 창간한 극우언론 ‘브레이트바트 뉴스’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세력이자, 현대판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한 ‘대안우익(alt-rightㆍ알트라이트)’의 모태로 알려졌다. 미 온라인매체 데일리비스트는 “흑인 유권자들의 영향력 증가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존재로 변화된 정치 지형에서 인종 갈등은 점점 수위를 높여 왔다”며 “트럼프의 등장은 150년 역사를 가진 백인우월주의를 전면에 불러낸 계기”라고 진단했다.

하루에 십수건씩 현안 관련 생각을 쏟아내는 트럼프의 트위터는 이날 내내 침묵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이 당장 변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트럼프 재선 캠프는 이날 재집권을 겨냥한 첫 TV광고를 선보였다. 30초 분량의 영상에서 트럼프는 취임 후 일자리 창출 등 자화자찬 못지 않게 민주당과 언론 등을 ‘적’으로 규정하며 분열의 정치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CNN은 “재선 광고는 샬러츠빌의 비극이 터진 지 단 하루 만에 나왔다”며 공개 시점과 내용 모두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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