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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인위도태(人爲淘汰)

입력
2015.11.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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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5년 4월25일 현재의 시모노세키(下關)인 단노우라(壇ノ浦)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은 이름뿐인 왕권 대신 무인정권이 일본 정치를 장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까지 권세와 영화를 누린 다이라(平) 일족, 즉 헤이케(平家) 집안은 압도적 군세(軍勢)를 갖고도 미나모토(源) 일족, 즉 겐지(源氏) 집안에 참패해 대부분이 수장(水葬)됐다. 반면 승리한 미나모토 일족은 가마쿠라(鎌倉)에 군사통치기구인 바쿠후(幕府)를 두고 본격적 무인시대를 열었다. 고려 무신정권 탄생과 거의 비슷한 시기다.

▦ 단노우라 전투 이후 일대의 바다에 헤이케 사무라이들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전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의 혼을 기리는 주민들의 축제도 이어져 내려왔다. 이 지역의 명물로 통하는 ‘헤이케 게(平家蟹)’를, 칼 세이건이 명저 <코스모스>에서 ‘인위도태’의 대표적 예로 든 것도 그 때문이다. 단노우라 전투 이야기를 수없이 들은 이 지역 어부들은 게딱지에 울퉁불퉁한 사람 얼굴이 새겨진 게를 잡으면, 바다에 풀어주기를 천년 가까이 거듭했으니 사무라이 형상이 더욱 뚜렷해졌다는 설명이다.

▦ 자연도태, 즉 자연선택과 대비되는 인위도태의 예는 생활 주변에 널려있다. 현재 우리가 먹는 과일과 야채 대부분이 인간이 선호하는 형질이 강화된 결과다. 점점 작아져서 이제는 외투 주머니에 들어갈 듯한 애완견도 마찬가지다. 인위도태에 걸리는 시간마저 단축하는 육종학의 발달로 인간사회와 닿은 ‘가장자리 자연’은 이미 전통적 모습이 아니다. 솔직히 진화인지, 퇴화인지 모를 이런 변화가 아직 미치지 않은 영역이 인간이다. 유사 이래 인간에 어떤 생물학적 변화가 이뤄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 그 대신 사회적 변화는 숱하다. 영양상태나 생활환경에 따라 조금씩 겉모습만 달라진 몸과 달리 그것에 담긴 의식은 널 뛰듯 변해왔다. 스스로의 생각뿐만 아니라 남의 생각, 집단의 의식까지 좌우하려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욕망 때문이다. 남의 생각에 아랑곳 없이 자신이 바라는 행동으로 이끌려는 원론적 의미의 ‘권력욕구’이기도 하다. 나라를 달군 ‘역사전쟁’에서도 그런 권력욕이 읽힌다. 해석되지 않은 사실(史實)은 없다지만, 끊임없는 해석권 다툼이 심상찮다. 역사에까지 ‘인위도태’를 시도하려는 권력욕구의 무한 분출이 씁쓸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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