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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적 지시ㆍ상습적 야근ㆍ형식적 회의… 한국 기업문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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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적 지시ㆍ상습적 야근ㆍ형식적 회의… 한국 기업문화 ‘D’

입력
2016.03.1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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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ㆍ비효율ㆍ불합리투성이

글로벌 기업 평균보다 훨씬 낮아

절반 이상이 조직건강도 바닥권

경영진ㆍ직원들 시각 큰 차이도

#. A기업 김 대리는 업무 시간 대부분을 보고와 회의 준비로 보낸다. 오전 9시 출근해 마케팅팀 회의, 임원보고 준비, 협력사 회의를 하고, 점심식사 이후에는 임원보고, 보고 후 대책회의에 꼬박 매달렸다. 정작 자신의 담당 업무는 처리할 시간이 부족해 오후 6시 칼퇴근은 꿈 같은 일이다. 외근, 업무 요청사항 등을 처리하면 밤 10시30분에야 사무실을 나설 수 있고, 이런 야근은 일상이 돼 아침에 출근해도 항상 멍하다. 그는 “잦은 회의로 의미 없이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지나치게 형식을 따지는 임원 보고는 같은 내용을 토씨만 바꿔 매번 다시 써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 국내 기업 임원으로 일했던 외국인 T씨는 한국 기업의 임원실이 ‘장례식장’같다고했다. 직원들이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선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엄숙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는 “불합리한 업무 지시가 내려 와도 이유를 묻거나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걸 보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불통·비효율·불합리로 요약되는 국내 기업의 후진적 조직문화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상명하복식 업무지시, 상습적 야근, 비생산적 회의, 불합리한 평가방식 등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15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발표한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국내 100개 기업의 조직건강도를 평가한 결과 글로벌 기업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 77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건강이 ‘최하 수준’인 기업이 절반 이상(52개)이었고, 특히 중견기업은 91.3%(63개사)가 ‘중하’ 또는 ‘최하’ 등급을 받았다.

이는 지난해 6월부터 9개월간 국내 기업 100개사의 임직원 4만명을 대상으로 리더십, 조율·통제, 역량, 책임소재 등 9개 영역 37개 세부항목을 평가해 분석한 것이다.

영역별로 한국 기업은 리더십, 조율과 통제, 역량, 외부지향성 4개 항목에서 글로벌 평균 보다 조직건강도가 낮았다. 조직 내 권위주의가 팽배해 있고, 성과평가, 직원개발, 비즈니스 파트너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평균 보다 높아 우수한 평가를 받은 영역은 책임소재를 따지는 역할 명료화와 동기 부여 2개뿐이었다.

한국 기업문화에 대한 호감도(낮을수록 부정적 평가)를 측정한 결과 습관적인 야근(31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직장인들은 주5일 기준 평균 2.3일 야근했고, 3일 이상 야근하는 경우도 43.1%에 달한 반면 야근이 없는 직장인은 12.2%에 불과했다. 특히, 여성 직장인도 평균 2일을 야근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러나 매일 야근하는 직장인의 생산성은 45%로, 평균 2.3일 야근하는 일반 직장인(57%) 보다 오히려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 외 비효율적 회의(39점), 과도한 보고(41점), 소통 없는 일방적인 업무지시(55점)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꼽혔다. 대기업 A과장은 “결재라인을 밟을 때마다 보고서 방향이 뒤집혀 자동차를 조립했다가 다시 분해해 재조립하는 일을 반복하는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경영진과 일반 직원들이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 차도 매우 컸다. 최고경영자(CEO)ㆍ임원은 자사 조직 건강도를 최상수준(71점)으로 평가했으나 직원들은 최하위권(53점) 점수를 줬다. 사내 조직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의사결정자들은 ‘조직을 건강하게 잘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직원들은 직장생활이 ‘죽을 맛’이라 느낀다는 얘기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우리 기업은 저성장 뉴노멀 시대의 파고를 절대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병들었다”며 “구시대적 기업문화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 기업운영 소프트웨어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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