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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은 뒤… 내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고통 속에 되살린 5·18 희생자들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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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은 뒤… 내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고통 속에 되살린 5·18 희생자들 목소리

입력
2014.10.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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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 한강 '소년이 온다' (ⓒ김병관)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 한강 '소년이 온다' (ⓒ김병관)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여러모로 고통스런 소설이다. 한국 현대사에 패인 가장 선연한 상처,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작가는 여러 화자의 시각으로 여러 시간대에 거쳐 서술한다. 첫 장에 등장하는 중학교 3학년 동호는 실존 인물이다. 작가가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기 전 거주했던 중흥동 한옥에서 동호는 엄마, 아빠, 작은형, 그리고 문간방에 세든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살았다.

군인의 총알이 친구의 옆구리를 관통하는 걸 눈 앞에서 본 동호는 계엄군이 광주로 쳐들어오던 날 시민군 집결소에 남아 죽음을 맞는다. 동호를 비롯한 시민들의 피가 광주거리를 벌겋게 물들인 뒤에도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 아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 시신 관리를 총괄했던 진수는 극렬분자로 분류돼 상무대에 수감된다. 그가 거기서 확인한 것은 한때 앞다퉈 총알 앞에 나섰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할 만큼 숭고하고 순정했던 자신들이 한낱 동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쉰 콩나물 줄기를 놓고 두 사람이 죽일 듯이 노려보는 상황에서 한 소년이 머뭇대며 외친다. “그, 그러지 마요. 우, 우리는…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얼마 있지 않아 진수는 특사로 석방되지만 당시의 기억을 이기지 못하고 10년 뒤 자살한다.

대검으로 난자당한 시민들의 주검을 수습했던 선주는 현재 지인들과 연락을 끊은 채 은둔하는 삶을 살고 있다. 5ㆍ18 생존자를 취재하고 싶다는 요청에 선주는 한동안 망설이다 거절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소설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5ㆍ18을 현재에 되살리려는 작가의 시도에서 비롯된다. 5ㆍ18이란 이름의, 치르지 못한 장례식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한국 사회에 작동하는 모습을 좇으며 작가는 작지만 또렷한 음성으로 말한다. 모두 나오라고. 그때를 경험한 사람이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든. 광주 사람이든 광주 바깥의 사람이든. 모두 나와 여전히 피폭 중인 이 나라의 현실을 목도하라고.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소년이 온다’를 “한국형 홀로코스트 문학의 시도”라고 해석했다. 나치의 만행을 주제로 삼는 홀로코스트 문학은 크게 두 부류, 진상을 규명하고 사실을 복원하는 것과 죽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나뉘는데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하는 매우 드문 경우라는 것이다. 그는 “5ㆍ18은 그 진상이 너무 압도적이라 사실을 서술하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쓰인 적이 많지 않다”며 “이 소설은 이미 죽어버려 말할 수 없는 5ㆍ18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부활시킨 드문 시도이자 그것을 매우 성공적으로 해낸 사례”라고 평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작가 약력

1970년 광주 출생.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당선.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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