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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여섯 가족에 찾아온 희망의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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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여섯 가족에 찾아온 희망의 실마리

입력
2017.05.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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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ㆍ김난주 옮김

RHK 발행ㆍ272쪽ㆍ1만3,000원

60세 되던 지난해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61)는 1997년 데뷔한 ‘중견 신인’이다. 나카노 요시키 제공
60세 되던 지난해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61)는 1997년 데뷔한 ‘중견 신인’이다. 나카노 요시키 제공

모든 로맨스 영화의 패턴은 2가지로 요약된다. 두 사람이 만나 티격태격하다 사랑을 이루거나, 사랑하던 두 사람이 헤어지거나. 사랑의 주체가 둘이 아닌 셋, 넷이 되어도 이 두 패턴의 변형일 터, 이렇게 보면 슈퍼히어로물의 패턴은 딱 한 가지가 아니던가. ‘좀 특이한 영웅이 세상을 구한다.’ 플롯의 규칙을 깨는 획기적인 이야기보다 정해진 규칙을 영리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일반적으로 더 잘 팔린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 지성이나 호기심보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더 발동한다는 방증 아닐까.

소설집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정해진 결말로 달려가는 6편의 단편을 담았다. ‘설마’했던 그 결말을 향해 고스란히 달려가는 이야기 속 인물들은 제 각각의 사연으로 애처롭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처럼.

유명 배우, 저명인사의 머리를 관리한 이발사가 인적 드문 바닷가에 세운 이발소. ‘파란 하늘과 깊은 남색바다’가 커다란 거울에 비치는, 손님을 위한 자리는 딱 하나 뿐인 이 특별한 이발소에 어느 날 청년이 찾아온다. 운 좋게도 단번에 예약에 성공한 청년은 1시간여에 걸쳐 이발과 면도, 마사지를 받으며 이발사의 굴곡진 인생을 듣게 된다.

대대로 내려오는 이발소집 아들로 태어난 이발사는 아버지가 급사해 가게를 물려받게 되고 단골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는 위기를 겪는다. ‘신타로 스타일(부스스한 스포츠머리)’이 유행하며 ‘신타로 잘하는 집’으로 이발소를 살려낸 그는 첫 번째 결혼 실패 후 과감한 투자로 가게를 최고급 이발소로 바꾸는데 성공하고, 한 유명배우가 단골로 드나들며 업계 명소가 된다. 두 번째 결혼으로 느지막이 자식까지 본 그는 욕심을 내 2호점을 내다 본점까지 위기를 겪고 의지했던 직원이 독립을 선언하며 말다툼 끝에 살해하게 된다. ‘살인자의 자식’을 만들 수 없어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출소 후 바닷가에 이발소를 차린 그는 청년의 머리를 만지며 말한다. “머리 뒤에 있는 꿰맨 흉터는 어린 시절에 다친 흔적이겠지요.”

여섯 편의 이야기는 가족의 상실 혹은 상실의 보완을 통해 근대 가족의 원형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어린 딸을 잃고 죽은 듯 살다 딸을 대신해 성인식에 참가하는 부부(‘성인식’), 열등감에 똘똘 뭉친 엄마의 억압에서 도망쳐 살다 16년 만에 재회한 딸(‘언젠가 왔던 길’),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반발해 친정에 갔다 매일 밤 기묘한 문자를 받는 여자(‘멀리서 온 편지’) 등 행복한 가정에서 조금 멀었던 이들은 일상 속 작은 마법 같은 순간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다.

가슴 먹먹한 대사, 절묘한 유머로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집은 일본 대중소설 신진작가에게 주는 나오키상 작년 수상작이다. 출간 즉시 아마존재팬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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