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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바람 피고 이혼소송? 염치는 있어야지

입력
2015.06.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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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이 열렸다. 유책 배우자 즉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먼저 제기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하여 뜨거운 공방이 벌어졌다. 원고는 아내를 두고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린 남편으로서, 실질적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상 비록 자신이 잘못은 했지만 이혼은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이혼소송은 그간 아무나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법정이혼은 협의이혼과 달리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정까지 와서 이혼을 해달라고 청구를 할 정도라면, 우선 법이 정하고 있는 이혼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 이혼사유를 일으킨 당사자가 아니어야 한다. 이는 법률에서는 정하고 있지 않으나 대법원이 견지하고 있던 입장이다. 즉 판례다. 이를 “유책주의”라고 했다(반대로 혼인이 실질적으로 파탄된 상태라면 설령 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라도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파탄주의”라고 한다).

그간 판례는 유책주의 쪽이었다. 그러므로 외도를 한 당사자는 도저히 현재의 배우자와 1분 1초를 함께 하기 싫고, 자신이 번 돈을 아내와 나눠 쓰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도, 아내가 이혼할 수 없다고 하는 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그럴 때에는 아내에게 별도의 유책사유가 발생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곧 아내도 바람을 피우거나 아니면 아내가 남편 또는 시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도박으로 집안경제를 말아먹거나 등의 유책사유가 생기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간통이 죄가 아니라고 해도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잘못한 사람이 이혼소송을 청구하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다. 게티이미지뱅크
간통이 죄가 아니라고 해도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잘못한 사람이 이혼소송을 청구하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리고 위 사건의 원고는 1심과 2심에서 유책주의에 따라 모두 패소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대법원에서 그렇게 뜨거운 공방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간통죄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는 “간통죄 유지 입장=유책주의”, “간통죄 폐지 찬성=파탄주의”인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간통죄 폐지에 찬성한다면 간통이 더 이상 죄가 아닌 이상, 간통을 했더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논리적인 사고인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유책주의도 파탄주의로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논의가 대법원에서 생중계를 통해 벌어졌다.

그러면 필자는 어떤 입장일까? 필자의 누드로 시리즈를 꾸준히 보신 분이라면, 필자가 간통죄 폐지에 대하여 찬성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필자도 파탄주의에 찬성할까?

제목에 답이 나와 있다. 아니다. 난 유책주의자다.

죄가 아닌 것과 잘못은 다르지 않은가. 간통이 죄가 아니라고 한들 여전히 잘못한 것은 사실 아닌가.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건만,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그 책임까지 면제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그리고 누드로 2화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간통죄를 믿습니까) 필자는 간통을 당사자간의 약정위반으로 본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민사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민사소송에서도 계약을 위반한 당사자가 먼저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하겠다고 소송을 통해 주장할 수는 없다. 상대방에게 채무불이행 사유가 있을 때에만 법정해제/해지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당사자간 협의야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혼소송까지 오겠다는 것은 한 쪽에서 이혼에 합의를 못 해주겠다고 해서 오는 것인데, 먼저 계약위반을 한 당사자가 혼인관계를 법적을 해지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민사소송의 개념에서 보더라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혼인파탄 사유가 어디 간통만 있는가? 배우자에 대한 폭력, 욕설, 형사처벌 등 여러 사유가 있다. 그런데 간통죄 하나 폐지되었다는 이유로 돌연 유책주의가 파탄주의로 바뀐다면, 온갖 잘못을 한 배우자도 뻔뻔하게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말종들과 살 바에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지, 잘못한 놈이 성내면서 이혼 하겠다는데 굳이 버티면서 이혼 못 해주겠다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남의 인생 그렇게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머리 속으로는 수 십 번을 헤어져야지 하고 맘먹었다가도, 이혼 후의 삶이 엄두 안 나는 사람들 많다. 이 사회는 그 어떤 위기 앞에서도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 나가는 사람보다는, 위기 마다 휘고 구부려지고 부러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한 장면. 물론 바람 핀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염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던 남편은 결국 무시무시한 복수를 당했다.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한 장면. 물론 바람 핀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염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던 남편은 결국 무시무시한 복수를 당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위자료와 양육비가 아직도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 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력 없는 여성들이 남성의 변심으로 이혼 당할 경우, 자식의 양육은 양육대로 책임지건만 생계는 막막해지게 된다. 일을 하면 된다고? 지금 젊은이들도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인 상황에서 자신의 직업 경력 다 포기하고 자식만 키우던 사람들을 써 줄 자리가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겠는가. 또한 남편들이 양육비 일부를 준다고는 하지만 그 액수도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지급하는 경우도 매우 적다. 처음에는 제대로 주다가 결국에는 이런 저런 사유로 흐지부지되고, 전처 입장에서는 다시 연락하는 것 자체가 끔찍해서 달라고 요구도 못 하고 양육비를 혼자 책임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잘못한 사람도 내키는 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게 하게 되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 차상위계층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게 될까, 난 사실 그게 가장 두렵다. 먼저 잘못한 주제에 같이 살기 싫다고 배우자 사람들이 전(前)배우자의 생계에 어디 큰 관심이나 기울일까.

필자는 결혼을 한 번도 해보지는 않았지만, 결혼이 책임이라는 것은 안다. 따라서 내가 먼저 그 책임을 져버렸다면 최소한 상대방이 먹고 살 길은 마련해준 후 이혼을 정중히 제안 드려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잘못해놓고 법원에 이혼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한다? 유책주의, 파탄주의 어려운 용어 다 떠나서 그냥 한 마디 하련다. 아무리 그래도 염치는 있어야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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