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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화염ㆍ유독가스 아비규환… “아내가 갇혀 있어요”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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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화염ㆍ유독가스 아비규환… “아내가 갇혀 있어요” 절규

입력
2017.12.21 22:3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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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고 현장

소방당국 10여분 만에 도착했지만

건물은 이미 시커먼 연기 뒤덮여

옥상으로 대피한 20여명은

수건ㆍ옷가지 흔들며 구조 요청

건물 창문 통해 빠져나와

외벽에 매달려 목숨 건지기도

사망자 대부분 불에 탄 흔적 없어

대피로 못 찾고 질식해 숨진 듯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가 진화작업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가 진화작업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아내가 2층 사우나에 있어요. 살려주세요.”

21일 오후 3시53분쯤 발생한 화마로 5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 하소동의 8층짜리 스포츠센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화재 직후 소방당국이 10여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건물은 이미 시뻘건 불길과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뒤였다. 건물 주변에 있던 한 시민은 “갑자기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오르더니 삽시간에 검은 연기로 바뀌면서 화염이 치솟았다”며 “불길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건물 전체를 삼켜버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불이 나자 소방당국이 헬기를 동원, 옥상으로 대피한 사람들 구조에 나섰으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처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출동한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에서 진화작업을 하는 도중에도 건물 안에서는 계속 폭발음이 들려왔다.

8층 건물 옥상에는 급히 유독가스를 피해 대피한 20여명이 수건과 옷가지 등을 흔들며 다급히 구조를 요청했다. 이들은 외벽 청소업체를 운영하는 이양섭(54)씨가 긴급 투입한 사다리 차와 소방헬기를 통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이씨는 “시커먼 연기가 너무 많이 나 사람의 위치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감으로 주변에 사다리를 댔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한 남성은 건물 창문을 통해 빠져 나와 위태롭게 외벽에 매달려 있다가 소방대원이 설치한 매트리스에 뛰어내려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또 다른 남성은 “아내가 2층 사우나에 있다”며 “빨리 구조해 달라”며 절규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한 여성은 타 들어가는 건물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르며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주민 여모(46)씨는 “평소 이 건물 목욕탕을 자주 이용했는데 갑자기 큰 일이 일어나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 헬기를 동원해 진화 작업을 펼치는 가운데 한 시민이 건물 외벽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 헬기를 동원해 진화 작업을 펼치는 가운데 한 시민이 건물 외벽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화재발생 2시간 여 만인 5시40분쯤 큰 불길이 잡히자 구조대원들이 건물 내부로 진입, 수색하면서 갇혀 있던 사람들의 생사를 확인작업을 벌였다. 2층에서 첫 번째 사망자를 확인한 뒤 시간이 갈수록 사상자가 늘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건물은 2~3층 목욕탕과 4~8층에 헬스클럽, 음식점이 함께 모여 있는 다중 복합시설로 인근에 아파트 단지와 대형마트가 있어 평소 이용객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들은 2층과 3층에 위치한 목욕탕과 계단 등지에서 주로 발견됐다. 현장에 있던 간호사는 “사망자 대부분이 여성으로 2층 목욕탕에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실려 나왔다”며 “불에 탄 흔적은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화재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옥상이나 비상구 등으로 탈출하려다 연기해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는 화재로 건물 내부가 순간 정전이 되거나 짙은 연기로 인해 시야확보가 힘든 상황에서 대피로를 찾지 못해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진화초기 도로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8m 폭을 확보하지 못해 소방대원들의 접근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화재피해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 중 하나란 분석이다.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주차된 차들로 인해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돼 초기 진화가 늦어진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제천시민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원인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당시 건물 1층에서 공사가 진행되던 도중 불이 났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주목하고 있다. 작업이 이뤄지면서 화재 방지 초지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용접 시 발생하는 불티는 3,000도 이상의 고온인 데다, 바람이 셀 경우 15m 이상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통풍이나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주위에 가연성 물질이 있을 경우, 불티 방지 덮개와 용접 방화포 등을 사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 작업장 내 위험물 위치 등을 파악하고 인화성 물질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염두에 두고 소화기구를 배치해야 한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추가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을 통제하고 건물 내 안전조치를 취한 뒤 사고원인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천=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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