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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안전' 심판에게 주어진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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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안전' 심판에게 주어진 책무

입력
2015.09.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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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성동구 동명초등학교에서 열린 ‘2015 대교눈높이 전국 초등 축구리그’의 시즌 마지막 라운드. 이날 열린 다섯 경기 중 두 번째 경기에서 경기 시작 5분이 채 되지 않은 시점 위급 상황이 발생했다. 한 선수의 갑작스런 발작 증세였다. 주심이 다급히 경기를 중단시키고 경기장 한쪽으로 순식간에 달려갔다. 상태를 빠르게 파악한 주심이 수신호를 보내자 곧바로 경기장 밖의 의료진과 감독관, 지도자가 급히 달려들어와 응급 처치에 나섰다. 다행히 빠른 대응으로 선수의 상태가 진정돼 경기는 재개될 수 있었다.

빠른 조치에 나섰던 이 경기의 주심 지미정(23) 심판은 경기 후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몇 시간째 말이 없었고, 부심과 대기심으로 나선 나머지 경기에서도 몹시 힘겨워 하는 모습이었다. 이 날 마지막 경기쯤 돼서야 입을 열었다. “그 상황이 계속 떠올랐어요. 이제야 좀 나아졌네요”.

3년 여의 심판 활동 기간 중 이런 일을 직접 겪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경기장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부모님과 함께 심판들에 찾아와 인사를 하고 돌아선 아이의 모습을 본 뒤에야 마음이 놓였던 모양이다. 선수와 부모의 창백한 얼굴과 붉어진 눈에서 그들의 충격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기자는 이 경기의 부심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약 10년 만에 심판 활동을 다시 시작한 후 처음으로 배정받은 공식 경기였기 때문인지, 매우 긴장한 상태에서 경기 흐름에만 집중하고 있던 찰나에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 일을 한 템포 늦게 확인하고부터는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 속이 하얘졌다. 빠른 목격과 판단으로 경기중단부터 의료진 투입까지 진두지휘 한 주심의 대처가 그래서 더 인상 깊었다.‘내가 주심이었다면 어땠을까’생각해보니 눈을 질끈 감게 됐다.

사진=soccerboom.net
사진=soccerboom.net

이 날 벌어진 일은 교육 때마다 수도 없이 강조된 위급상황 대처 사례와 딱 들어맞는다. ‘선수의 발작 시에는 빠른 경기 중단 후 기도(氣道) 확보부터 하라’는 내용은 10년 전 첫 심판강습회 때부터 최근의 보수교육 때까지 항상 언급돼 온 내용이다. 선수의 생명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축구심판 교육은 결국 기-승-전-‘안전’이다. 프로와 아마추어 가릴 것 없이 안전을 외면하면 체육활동의 의미는 사라진다. 축구 규칙의 상당 부분이 경기장 시설과 공의 기압, 선수의 장비, 반칙 관련 조항 등 선수와 관중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장에서도 심판에겐 안전에 대한 상당한 책임이 주어진다. 심판들은 보통 경기 시작 2시간 전, 늦어도 1시간 전까지는 경기장에 모인다. 이날 역시 심판들은 공지상의 집결 시간은 오전 10시였지만 11시 예정된 첫 경기를 2시간 앞둔 9시부터 경기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경기 전 살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걸 체득해왔기 때문이다.

경기장에 모인 심판들은 첫 경기 선수들이 훈련을 시작 하기 전까지 경기장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코너 플래그와 골 그물이 제대로 설치 됐는지 먼저 살핀 다음 경기장으로 들어가 떨어진 동전 찾듯 무언가를 찾는다. 심판들이 들어올리는 건 돌멩이나 쓰레기 등의 이물질들. 대형 경기장과는 달리 평소 학생과 시민들이 사용하는 운동장들에는 이처럼 선수 안전을 방해하는 이물질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들더라도 경기장을 살피는 일은 거를 수 없다. 경기장 내의 손상된 인조잔디나 깊게 파인 지점들이 발견된다면, 직접 모래를 날라 채워 넣기도 한다. 경기 직전까지의 안전을 위한 점검은 계속된다. 선수 소집 후 저시력 선수의 고글부터 정강이 보호대, 축구화 등 사소한 장비까지도 꼼꼼히 살핀다. 너무나도 당연한 절차지만 선수 안전을 위해선 결코 한 가지도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정을 모두 마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심판들의 발걸음은 몹시 무거웠다. 기자 본인에게도 이날의 경험은 적잖은 충격이었지만, 경기장 내 안전에 대한 심판의 의무와 대처법을 몸소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교육 때마다 반복해 들으며 남 일일 것만 같았던 위급상황이 내가 투입된 경기에서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일깨워 준 일이었다. 왼쪽 가슴에 단 휘장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 ‘심판 복귀전’이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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