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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사 통제 막을 장치 없어… 국회가 견제 가능한 입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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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사 통제 막을 장치 없어… 국회가 견제 가능한 입법을

입력
2016.05.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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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집필ㆍ예비비 전용 의혹 등

편찬 과정 논란도 검증 필요성

“앞으로 이념 쟁점화 막으려면

사회적 논의 독립 기구 구성” 제언도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가져올 국정 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2015년 9월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2,255인 선언)

“정치ㆍ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역사교육을 퇴행시키는 등 많은 부작용과 악영향이 예상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중단하라.”(2014년 8월 한국사 관련 7개 학회 공동성명)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역사학계와 교단을 포함한 광범위한 반대 여론에 포위된 형국이다. 특히 지난 4ㆍ13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주요인으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반감이 지목되고, 야권이 총선 직후 국정교과서 폐기를 최우선 공조 과제로 선언하면서 정책 동력은 급격히 약화된 상황이다.

정부가 교육부 업무보고 형식으로 국정교과서 편찬 방침을 공식화한 것은 집권 2년차인 2014년 초였지만, 집권 첫 해였던 2013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까지 감안하면 현 정부 임기 내내 첨예한 ‘역사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 초기 불거진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좌편향 논쟁까지 상기하면 보수정권 재집권 이래 한국사 교육이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이 파행적이고 소모적인 논란을 종식시킬 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교과서 발행, 국회 통제 받아야

전문가들은 미래세대의 역사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과서 발행체제를 정부가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바꿀 수 있는 현행 법령 체제를 국회가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현재 대통령령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과 그에 근거한 교육부 고시를 통해 초ㆍ중ㆍ고교에서 사용되는 모든 교과서의 편찬 방식을 국정, 검정, 인정 중 선택할 수 있다. 국회의 견제 없이 정부 의지대로 교과서 국정화가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교육이 갖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교육부 장관 고시만으로 교과서 발행체제를 전환할 수 있는 현행 제도는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며 관련법 제ㆍ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19대 국회에 제출됐던 이른바 ‘국정화 저지 법안’을 20대 국회에 다시 발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제출된 이들 법안은 모두 3종이다. 이 중 2종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의 상위법인 초ㆍ중등교육법의 개정안으로, 박홍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바꿀 때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했고 김태년 의원 대표 발의안은 중ㆍ고등학교에선 국정교과서 사용을 아예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종환 의원은 ‘역사교과용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을 다른 의원 125명과 함께 발의했는데, 역사교과서는 국정 발행을 금지하고 정부의 교과서 검인정 기준을 심의할 민간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골자다. 도종환 의원실 관계자는 “이들 법안이 연내 처리될 경우 정부의 국정화 계획을 백지화할 수 있다”며 “다만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을 제한하는)국회선진화법 하에서 여당 반대로 법안 처리가 지연된다면 당장 내년에는 국정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역사교육 대한 사회적 합의 이뤄야

집필진 및 집필기준 비공개, 예비비의 국정교과서 홍보비 전용 의혹 등 국정교과서 편찬 과정상의 파행에 대해서도 국회가 낱낱이 밝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권 국정화저지네트워크 대표(덕성여대 교수)는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에 나서면서 최고 수준의 필진 구성, 편찬 과정의 투명한 공개를 약속하고도 전혀 이행하지 않았고, 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기간 동안 반대의견 수렴은커녕 비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등 민주적 절차를 어겼다”며 “20대 국회는 상시청문회법에 따른 첫 청문 대상으로 국정교과서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 교육이 이념이나 정략에 오염되지 않으려면 국회가 정부의 자의적 개입을 차단하는 것을 넘어 바람직한 역사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경기 양주고 교사)은 “역사 교육이 교과서를 빌미로 정치 쟁점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학문적이고 독립적 기반을 갖춘 ‘역사교육위원회’(가칭)를 구성해 역사교육 및 교과서 편찬과 관련한 기준안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독산교 고사)은 “이념 논쟁이 치열했던 독일 분단기에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국가 차원의 정치교육 원칙을 수립했던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사례처럼, 역사교육에 관심 있는 주체들이 광범위하게 모여 역사교육의 기본 방향 및 쟁점 조율에 관한 원칙을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할 사회적 논의기구를 국회가 주도적으로 출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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