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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역학에 대한 몇가지 오해

입력
2015.05.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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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기한 담배소송이 진행 중이다. 소송의 요지는 국내외 3개 담배회사에 건강보험 가입자 중 흡연력 20갑년 이상이자 30년 이상 흡연한 자들 중에서 흡연 연관성이 특히 높다고 보고된 소세포암, 편평상피세포암, 편평세포암 환자 치료 비용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폐암 발병 개개인이 제기한 이전 소송과는 달리 흡연과 관련성이 높은 특정 암환자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판결의 추이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재판의 변론과정에서 역학이라는 학문의 가치와 유용성에 대한 논란을 접하면서 역학 연구하는 학자로서 몇 가지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담배회사들은 역학 연구가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이므로 법정에서 활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역학이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역학 연구에서 제시된 과학적 증거를 법정에서 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다. 역학 연구는 개개인을 관찰해서 밝혀낼 수 없는, 질병 발병위험을 높이는 유해요인을 찾아내는 실용적 학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관련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과학적 증거에 관한 참조 매뉴얼’ 3판에서는 역학 연구의 결과가 법정에서 적극 활용되는 사례가 많음을 지적하고,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도 이들 역학 연구 결과를 적용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담배회사들은 또 역학이 인구집단에서 관찰된 특정 요인과 질병과의 일반적 관련성만 말할 수 있을 뿐 개개인의 발병 원인을 밝혀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집단과 그 구성원인 개인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논리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역학 연구에서 보고된 인과적 관련성에 대해 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에게서 관찰되는 개별적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역학 연구의 결과는 허공에 뜬 구름 잡기가 되고 만다. 장기간 흡연으로 인한 집단적 피해와 흡연 감소로 인한 예방 효과는 흡연하는 개인에게서 관찰되는 개별적인 인과적 관련성의 총합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법정에서 따져야 할 것은 역학 연구에서 관찰된 관련성이 실제 인과적이라 할 수 있는지, 제시된 연구결과가 제대로 수행된 연구에 근거한 것인지, 그 관련성의 크기가 다른 위험요인의 영향을 배제할 정도인지 등의 대목이다.

환경적 유해 요인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만성질환의 특성에 대한 이해에도 문제가 있다. 과거 대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질환을 특이성 질환과 비특이성 질환으로 나누고, 흡연으로 초래되는 폐암은 비특이성 질환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의학 분야에서는 생소한 것이어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단일요인으로 발생하는 만성질환은 없다. 결핵과 같은 감염병도 균의 존재는 필요조건일 뿐이고, 기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해야 질병이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만성질환과 특정 환경적 유해요인과의 관련성에 특이성이 있는가, 있다면 그 수준이 높은 가이다. 그런 점에서 소세포암 등 일부 조직학적으로 특수한 폐암은 다른 조직형의 폐암보다 흡연과의 특이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환경적 유해요인과 특정 질환과의 특이성의 정도가 법적 책임 공방에서 개별적 인과성을 수용할 정도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담배소송이 갖는 공익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흡연으로 인한 질병 때문에 건보공단이 매년 1조7,000억원을 추가로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연을 억제하기 위한 담뱃값 인상과 막대한 국가 재원의 투자는 개인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사회적 부담을 경감시키고자 하는 사회정의의 실천과정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담배판매로 막대한 이익을 취해 온 담배회사에 집단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이번 소송에서 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한다.

김동현 한림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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