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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부실 설문조사에 근거한 '비정규직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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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부실 설문조사에 근거한 '비정규직 대책'

입력
2014.12.3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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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이윤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29일 발표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핵심은 35세 이상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기간을 2년에서 최장 4년까지 늘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근거로 내세운 것은 기간제 근로자들이 계약기간 연장을 원한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였다. 비정규직 경험자 1,1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인데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되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계약 종료시 금전 보상을 하는 방안’에 대한 찬반을 물었더니 찬성한 응답자가 82.3%에 달했다는 것이다. ‘한 사업장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할 수 있는 최대 기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서 53%가 ‘기간제한 필요 없음’이라고 답한 것을 두고 고용부는 “당사자가 원한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정작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간제 근로자의 의사를 묻는 질문은 없었다.

이러니 한국노총이 비정규직 조합원 4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 정반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한국노총이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방안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 69.2%가 기간 연장에 반대했다. 고용부 설문조사 결과는 기간제 근로자들이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늘리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묶이는 기간 제한 자체를 반대하고 궁극적으로 정규직 채용을 원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은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 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비정규직이 해고를 염려해 고용주가 원할 경우 근로기간을 연장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권혁태 고용부 근로개선정책관은 “본인(비정규직)이 더 좋은 조건이 있으면 이직하려고 하겠지만 다른 조건이 없으니 옮기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근로기간 연장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2005~2011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체 패널 조사에 따르면 기간제 일자리가 2년 이후 정규직 일자리로 전환된 비율은 2007년 21%, 2009년 17%, 2011년 12.7%로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것은 본인이 선택했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기 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기간제 사용기한을 늘릴 경우 기업 입장에선 숙련된 비정규직을 더 오랫동안 고용할 수 있어, 정규직으로 뽑을 일자리조차 기간제로 뽑게 될 것이라며 노동계가 반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평소 “비정규직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당사자가 원한다는 계약기간 연장을 노동계에서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으니 도대체 당사자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장관은 정규직 전환을 꿈꾸는 대다수 비정규직 대신 사실상 정규직 전환을 포기한 채 이직 수당 정도에 만족하는 비정규직만을 ‘당사자’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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