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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귀하의 사이버 인권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2014.07.2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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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유엔 인권최고대표 사무소가 의미 있는 보고서를 한 편 발표했다. ‘디지털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보고서다. 디지털 프라이버시권이란 말 그대로 사이버 공간에서 보장되고 보호돼야 하는 개인의 사생활을 의미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생활을 뛰어넘는 사이버 인격의 보호다.

유엔이 이례적으로 디지털 프라이버시권 보고서를 발표한 이유는 지난해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알려진 미국 등 주요 국가 정보기관들의 인터넷, 통신 등 사이버 감시가 심각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골자는 정보기관들의 국경을 뛰어넘는 광범위한 사이버 감시가 인권에 위협적인 만큼 각국 정부가 디지털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별도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각국이 국제인권법을 완벽하게 준수하는 지 검토하고,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포괄적 입법 활동을 하도록 제안했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일까. 매년 정부에서 수사기관의 합법적인 통신 감청건수 등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를 온전히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국가 정보력을 발휘해 사이버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밝힌 지난해 전화, 이메일, 비공개 게시물 등을 포함한 통신 감청 건수는 632건이다. 이는 447건이었던 전년 보다 41.3% 증가한 수치다. 이 중에서 국가정보원의 감청 건수가 512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국가 기관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별도의 감청장비 등을 운용해 실시하는 자체 감청 건수는 제외됐다. 따라서 진보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실제 국가 기관에서 이뤄지는 통신 감청 건수는 몇 배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굳이 국가 기관의 감청이 아니더라도, 민간 업체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섬뜩했던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201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구글 본사를 방문했을 때였다.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근무하는 43번 건물에 들어서니 머리 위에 커다란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거기에 제대로 읽기도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수 많은 글자들이 정신없이 명멸했다.

안내를 맡은 구글 본사 직원에게 저게 도대체 무엇인 지 물어봤다. 구글 직원의 대답은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구글에서 검색하는 단어가 바로 스크린에 표시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구글은 세계인들이 구글 검색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어떤 일에 가장 관심이 있고 무엇을 찾고 있는 지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스노든의 폭로가 있기 전인데도 머리 끝이 서면서 절로 ‘빅 브라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스노든은 지난해 6월 구글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프리즘’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정보 수집에 협조했다고 폭로했다.

이쯤 되면 우리도 한 번쯤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우리들의 사이버 인권은 국가기관이나 해외업체들로부터 안녕한지 말이다. 국민들이 이 질문에 안심할 수 있는 대답을 들으려면 이에 걸 맞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가위원회 등 인권 보호를 위한 정부 기구들은 있지만 과연 이들이 사이버 인권을 제대로 지켜줄 만큼 든든한 지 의문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시민단체들은 국회의 정기적인 국정 감사에서 밝히기 힘든 부분까지 찾아내고 시정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감독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참에 얼마 전 만난 스위스의 정보기술(IT) 기업체 최고경영자(CEO)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에 따르면 미국 IT업체들은 스위스에서 사업을 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이유는 스위스는 법적으로 스위스 국민들에 관한 자료, 스위스 국민들이 만든 데이터를 해외로 가져갈 수 없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폰이나 구글은 쓰기조차 힘들 텐데 물론 잘 지켜지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설령 선언적이라고 해도 스위스 정부의 자국국민 정보보호 마인드만큼은 강한 게 분명하다. 정부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의지는 보여줘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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