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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식물성 고기의 습격

입력
2020.04.17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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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고기처럼 육즙이 흐르는 임파서블 푸드의 채식고기. 임파서블 푸드 제공.
실제 고기처럼 육즙이 흐르는 임파서블 푸드의 채식고기. 임파서블 푸드 제공.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제품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IT제품만큼이나 주목받은 식품이 있다. 바로 ‘식물성 버거’다. 2019년 CES에서 식물성 소고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 기업이 올해는 식물성 돼지고기와 소시지를 선보이면서 2020년 CES 5대 트렌드에 선정되었다.

과거에도 식물성 고기가 존재했지만, 실제 고기의 맛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했다. 임파서블 푸드는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콩 뿌리에서 추출한 DNA의 유전자 조작으로 실제 고기 맛과 피 색을 구현했다. 이 기업의 창업자인 ‘페트릭 브라운’ 박사는 맛과 영양 조절이 가능한 소고기, 돼지고기뿐 아니라 닭고기와 물고기까지 만들어낼 것이라고 했다. 2035년까지 세계 식량에서 축산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이들의 미션이다.

식물성 고기는 축산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환경오염과 동물윤리, 그리고 인구증가에 따른 육류 소비 증가 등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최근 다양한 식물성 고기 회사들이 글로벌 IT 기업들의 투자를 받고 있으며, 일부 제품은 이미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판매 중이다. 또한, 음식을 통해 환경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셰프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 채식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한 바 있는 영국의 ‘고든 램지’ 셰프는 그의 레스토랑 메뉴에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물성 버거를 추가했다. 특히 채식주의 중에서도 비건(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채식주의자)의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식물성 고기 시장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 블러(Big Blur: 기존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는 현상) 시대를 맞이한 지금, 축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세계 축산업계는 식물성 고기라는 축산대체 식품과도 경쟁해야 하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식물성 고기 옹호자들과 반대자들의 논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산된 고기가 아니면 ‘beef, meat’ 같은 단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러한 세계적 변화에 대해 우리 축산업계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식물성 고기가 앞으로 한국 축산업계를 강타할 태풍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업 생산액의 40%를 점하는 축산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면, 농업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게다가 식물성 고기는 축산물이 아닌 조제 식료품으로 수입되어 0%의 관세가 적용된다. 점점 낮아지는 가격으로 인해 그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축산물의 새로운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우리의 맛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품질은 물론이고, 가격에서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쌀떡볶이의 사례는 축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에는 쌀떡볶이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밀떡볶이의 비중이 증가하며 사람들의 입맛이 그것에 길들여져, 이제는 길거리에서 밀떡볶이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수입고기나 식물성 고기의 맛에 익숙해져, 국내 축산물을 외면할까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간담회에서 만난 양돈 농가들도 식물성 고기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고자 농업 분야에서 최고 수준인 네덜란드 와게닝겐 대학과 컨설팅 형태의 화상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2001년 소고기 수입 개방이 확정되었을 때, 많은 전문가가 축산의 위기 상황을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 축산 농가들은 품질 향상을 통한 ‘한우’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한국 축산인의 역량을 보여 주었다. 이번 상황 역시,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국 축산업계의 지혜를 다시 한번 보여 줄 때이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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