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사제 독신제’ 함구한 교황… 보혁 모두 아전인수 해석

알림

‘사제 독신제’ 함구한 교황… 보혁 모두 아전인수 해석

입력
2020.02.13 22:30
수정
2020.02.13 23:01
16면
0 0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일 바티칸 바오로6세 홀로 입장하고 있다. 바티칸=AF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일 바티칸 바오로6세 홀로 입장하고 있다. 바티칸=AF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사제 독신제’를 허용할지 말지, 끝내 결정하지 않았다. 2013년 즉위 후 ‘보수의 성역’인 가톨릭 주요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진보 발언으로 기대를 모았던 터라 그의 침묵은 사제 독신제를 둘러싼 교회 내 보혁 논쟁을 더욱 불 붙게 할 전망이다.

교황은 12일(현지시간) 남미 아마존 지역의 주요 이슈를 논의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와 관련해 ‘친애하는 아마존에게’라는 제목의 교황 권고를 발표했다. 사회 정의 등 여러 주제를 놓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지만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의 시선은 딱 하나, 교황이 과연 기혼 남성에게도 “사제 서품을 주겠다”는 말을 하는지에 쏠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입을 닫았다. 결정을 보류한 셈인데, 외신은 “교황이 사실상 독신제 유지에 손을 들어줬다”고 풀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간 ‘내부 개혁 행보’로 명성을 쌓았다. 바티칸의 의심스러운 금융 거래 정보를 다른 나라와 공유하는 등 투명성을 높이는 작업이 신호탄이었다. 2016년엔 이혼자의 재혼을 불허한 가톨릭계 전통을 일부 완화하자는 시노드 권고를 수락했다. 성소수자도 포용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교황은 ‘이단 논란’을 피하면서도 개혁적 이미지를 담게 했다”고 해석했다. 당연히 교회 보수세력과의 관계 악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사제 독신제는 교황의 개혁 공세를 방어하는 보수파의 마지노선이었다. 교황은 지난해 시노드에서도 늘 그랬듯 “사제 독신제는 교리가 아닌 전통”이라는 해석 여지를 남기는 말로 예외 인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성직자 자격 확대를 요구해 왔던 많은 가톨릭인들은 환호했지만 보수파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은퇴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마저 관례를 깨고 보수세력을 대표해 입장을 표명할 정도였다.

사제 독신제에 대한 양측의 대립이 유독 치열한 것은 이 제도의 오랜 연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초기 가톨릭 당시 성직자가 교회를 자녀에게 세습하는 폐단이 극심해지자 교황은 1123년 사제 독신제를 교회법으로 강제했다. 9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위기도 있었지만 전통은 굳건하게 지켜져 왔다.

보수파는 “하늘나라를 위해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독신제 유지를 합리화한다. 가톨릭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성경이 독신제를 명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교리를 위반할 수 있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경직된 교회 문화 타파를 갈망하는 신자들은 반론이 얼마든지 있다고 항변한다. 초대 교황으로 인정되는 사도 베드로가 기혼자였고, 지금도 결혼한 성공회나 동방정교회 사제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경우 기혼 남성 성직자가 탄생할 기반이 마련돼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결혼을 금지하고 금욕을 강요한 가톨릭의 관습이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 배경이라는 극단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교황이 판단을 미룬 것은 양측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한 쪽 편을 들지 않았는데도 보수와 진보는 저마다 유리한 해석을 내렸다. 선택의 파장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얘기다. 보수파는 현 교황 즉위 뒤 교회가 지속적으로 보여온 자유주의 행보에 대한 불만이 누그러지는 계기가 됐다고 단언했다. 게르하르트 루트비히 뮐러 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은 이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교황 권고문은 교회 내부 파벌과 이데올로기적 고착 등을 감소시킨 화해의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17년 현 교황에 의해 경질된 보수파의 대표 인사다.

진보 세력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교황의 무대응은 ‘사제 독신제 허용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교황의 고문 역할을 하는 마이클 체르니 캐나다 추기경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마존 사제 문제는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권고문을 발표하기 직전인 10일 미 주교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미래 어느 날 기혼 남성에게 사제품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장은 시노드라는 공식 회의체를 통해 제도를 변경할 수 없어도 앞으로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는 예고인 셈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