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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스크 (미래) 사회

입력
2020.02.05 04: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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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가 품절되자 한 중국인이 오렌지 껍질로 만든 마스크를 썼다. 전염병과 미세먼지로 인류는 ‘마스크 사회’를 맞이하게 될까. (웨이보 캡처)
마스크가 품절되자 한 중국인이 오렌지 껍질로 만든 마스크를 썼다. 전염병과 미세먼지로 인류는 ‘마스크 사회’를 맞이하게 될까. (웨이보 캡처)

지하철을 탈 때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많아지는 걸 목도한다. 일주일 전쯤만 해도 열 명에 한둘이었다. 서너 명으로 늘더니 이제는 과반이다. 사람들 입이 오리주둥이 같다. 하지만 누구도 유난 떤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스크 대란이다. 오렌지 같은 과일 껍질이나 배춧잎, 페트병, 심지어 여성 속옷을 이용한 핸드메이드 마스크가 등장했다는 중국 이야기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정부는 마스크 폭리와 매점매석을 강력하게 단속한다고 발표했지만 값은 매일매일 치솟고 마스크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한다. 인도나 대만 같은 여러 나라들은 이미 자국 생산 마스크 수출을 금지시켰다.

여기부터는 순전히 상상의 소산이니 겁먹지는 마시라. 그게 가까운 미래든 먼 미래든 간에 말이다. 모든 행사나 집회, 대중교통에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다니면 공중보건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폭력이 정당방위가 된다? 드론이나 CCTV로 정부가 마스크 착용 여부를 감시한다?

과거 담배와 인삼처럼 마스크는 국가만이 생산하고 공급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마스크는 중요한 정치 경제 사회 문제가 될 것이다. 5,000만명이 마스크를 써야 한다면 폐기와 소각이 환경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가 바이러스나 미세 먼지를 줄여 주는 건 아니다.

마스크 기술과 산업은 엄청나게 발전할 것이다. 일회용은 사라질지 모른다. 공기정화, 항균, 흡입배출 농도 자동조절, 오염측정기 필터 모터 충전기 부착, 초음파 전자기장 열선 이용 마스크 같은 건 어려운 기술이 아닐 거다. 번거롭게 귀에 걸지 않는 마스크도 나올 거다. 작은 방독면 같은 모양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마스크는 안경처럼 패션 아이템이 될 거다.

이러다 보면 마스크가 신분의 표상이 될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10만원이 넘는 공기정화 마스크를 팔고 있다. 아이들은 운동화 브랜드처럼 마스크 브랜드를 따질 것이다. 인공 장기의 보급처럼 마스크도 빈부격차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지 모른다. 같은 공기지만 부자들은 초고가 스마트 마스크로 정화해 마시고, 빈자는 오염된 공기를 감내해야 한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인류 문화 속의 마스크는 이런 게 아니었다. 마스크는 가면이자 복면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이거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면무도회에서나, 알렉상드르 뒤마의 ‘철가면’이거나, 하회탈이나 초랭이탈이거나, 핼로윈 마스크거나, TV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나, 마스크는 죄가 없다 (검찰청 포토라인이나 ATM 기기 앞의 마스크는 말고).

마스크는 저항과 자유와 유희의 상징이기도 했다. 가이 포크스의 가면(영화 ‘브이 포 벤데타’), 짐 캐리의 초록색 마스크(영화 ‘더 마스크’), 요즘 많이 팔리는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마스크. 복면금지법에도 불구하고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주민들의 시위와 수만 명 여성들이 혜화동 ‘미투’ 시위에서 쓴 검은 마스크를 기억한다.

‘사람(person)’은 ‘페르소나(persona)’에서 나왔다. 라틴어 페르소나의 어원은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 즉 마스크다. 인간은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갖고 살아간다. 그 마스크가 숨김과 저항이 아니라 두려움과 침묵을 환기하는 물건이 돼 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앞서의 상상이 ‘발칙한’ 것이길 바란다. 지금 나는 도서관에서 마스크를 쓴 채 이 글을 쓴다. 양쪽의 학생과 어르신도 하얀 마스크를 썼다. 이러다 ‘가면 우울증(masked depression, 가면을 쓴 것처럼 드러나지 않는 우울증)’에 걸리는 거나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어찌하랴. 조심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나도 아침에 내 새끼들에게 말했다. “마스크 꼭 챙겨라.”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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