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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 박소정 대표 “애서가를 위한 책은 애서가가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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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 박소정 대표 “애서가를 위한 책은 애서가가 만들어야죠”

입력
2020.01.28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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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차린 뒤 낸 첫 책 ‘미지의 걸작’을 들어 보이고 있는 박소정 녹색광선 대표. 박 대표 스스로가 '문학 덕후'다. 녹색광선 제공
출판사 차린 뒤 낸 첫 책 ‘미지의 걸작’을 들어 보이고 있는 박소정 녹색광선 대표. 박 대표 스스로가 '문학 덕후'다. 녹색광선 제공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가 복수를 위한 총을 만든 뒤 이렇게 말하죠. ‘뭐든 예뻐야 해.’ 책도 그래요. ‘예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표지 일러스트를 직접 그렸다. 1년간 크로키를 배울 때 염두에 뒀던 일이다. 그가 만든 책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는 이유를 알 만했다.

2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1인 출판사 ‘녹색광선’ 박소정(44) 대표는 출판사 차리기 전부터 ‘문학 덕후’라 불렸다. 17년간 인사ㆍ교육을 담당했는데 맡은 업무 중에 ‘직원들에게 책 권하기’가 제일 신났다. 자기계발서보다 문학을 더 열심히 권했다.

그랬으니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40대 초반, 회사를 그만뒀다. 마음에 쏙 드는 특별한 책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서다. “출판사 이름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 제목에서 따왔어요. 녹색광선은 해질 무렵 드물게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인데, 영화 주인공들은 이걸 무척이나 기다리거든요.” 출판을 시작한 이유와 연결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과학 전문 출판사냐”, “제다이의 광선검 같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출판사 첫 책을 찾아 1년 넘게 헤맸다. 지난해 1월 드디어 펴낸 첫 책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 알려지지 않은 근대 문학 작품을 발굴하겠다는 출판사 정체성과 기묘하게 얽힌 제목이다.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퇴직금이 밑천이라 판권에다 큰돈을 걸긴 어려웠다. 저작권 문제가 없는 고전이 상대하기 쉬웠다. 첫 책이 이리 나오자 두 번째 책은 ‘감정의 혼란’(슈테판 츠바이크), 세 번째 책은 ‘눈보라’(알렉산드르 푸시킨)로 이어졌다. 양장에다 크로키를 더해 예쁘게 내놨다.

지난해 1월부터 1년 동안 녹색광선은 3권의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 근대 문학 작품을 발굴해 펴냈다. 아래부터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 푸시킨의 '눈보라'. 녹색광선 제공
지난해 1월부터 1년 동안 녹색광선은 3권의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 근대 문학 작품을 발굴해 펴냈다. 아래부터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 푸시킨의 '눈보라'. 녹색광선 제공

원래 목표는 ‘1년에 3,000부, 5년간 1만부’였다. 일본의 1인 출판사 ‘나츠하샤’의 원칙에서 따온 것인데, 성적은 의외로 좋다. ‘미지의 걸작’과 ‘감정의 혼란’은 출간 1년도 안 돼 3, 4쇄를 찍었다. ‘눈보라’는 출간 1주일 만에 2쇄에 들어갔다.

성적표 못지않게 기쁜 건 자신의 노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감정의 혼란’은 출간 석 달 만인 지난해 9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됐다. 지난 1월 내놓은 ‘눈보라’는 “녹색광선의 색깔과 정말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던 독자의 추천이 출간의 계기가 됐다. 그간 생겨난 팬들은 이제 국내 대가의 고전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심심찮게 낸다.

그렇다고 현대물을 포기한 건 아니다.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와도 판권 계약을 했어요. ‘사랑과 권태’에 대해 도발적 질문을 던진 현대 작가의 소설을 준비 중이에요. 우리 독자도 꽤 흥미를 가질 거라 믿어요.”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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