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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로널드 맥네어의 SF (1.28)

입력
2020.01.2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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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호 승무원 로버트 멕네어는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50년대 미국 남부 출신으로, 흑인 우주비행사의 SF같던 꿈을 실현시킨 개척자였다. nasa.gov
챌린저호 승무원 로버트 멕네어는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50년대 미국 남부 출신으로, 흑인 우주비행사의 SF같던 꿈을 실현시킨 개척자였다. nasa.gov

1986년 1월 28일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 코너에서 두어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무원으로 선발됐다가 희생된 고교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Christa McAuliffe, 1948~1986)와 가수 존 덴버(1943~1997)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만든 ‘Flying For Me’란 노래 이야기가 그 중 하나였다.

매사추세츠 공대(MIT) 출신 물리학자 겸 우주비행사 로널드 어빈 맥네어(Ronald Ervin McNair, 1950.10.21~1986.1.28)도 희생자 7명 중 하나였다. 그는 1978년 우주비행사로 선발돼 84년 챌린저호 1차 미션(STS41-B)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력자로, 2차 미션(STS51-L)의 탑승운용기술자로 탑승했다. 태권도 유단자에다 프로 수준의 색소폰 연주자이기도 했던 그는 2차 미션 전 작곡가 장 미셸 자르와 함께 ‘랑데뷰 Ⅵ’란 곡을 작곡, 우주에서 그 곡의 색소폰 파트를 연주-녹음해 NASA 창립 25주년 축하공연에 쓴다는 임무도 부여 받은 상태였다. 사고로 그 이벤트는 무산됐지만 곡은 맥네어를 기려 ‘라스트 랑데뷰(Ron’s Piece)’란 곡명으로 그 해 4월 초연됐다.

맥네어는 9살이던 1959년, 혼자서 1.6㎞를 걸어 지역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거부 당한 일이 있었다. 거긴 인종 분리ᆞ차별이 극심하던 사우스 캐롤라이나 레이크시티였다. 담당 사서가 “흑인은 안 된다”며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그는 버텼고, 급기야 사서는 “말썽이 생겼다”며 경찰과 맥네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동한 백인 경찰관 2명은 어이없어 하며 사서에게 “그냥 책을 빌려주면 안 되냐”고 종용했다고 한다. 책을 받아 든 맥네어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어머니와 함께 귀가했다.

레이크시티 시의회는 2011년 1월, 이제는 박물관이 된 그 건물 명칭을 ‘로널드 맥네어 박사 생애사 센터(The Dr. Ronald E. McNair Life History Center)’로 개명했다. 그의 형 칼(Carl)은 NPR 인터뷰에서 “60년대 우주비행사는 그야말로 ‘셀럽’이었고, 흑인이 우주비행사가 된다는 건 SF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론은 그걸 ‘과학의 가능성(Science Possibility)’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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