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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자연재해 같은 세상에서도 숨 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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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자연재해 같은 세상에서도 숨 쉴 수 있기를”

입력
2019.10.30 18:44
수정
2019.10.30 20:3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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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를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를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요. 일본에선 이상 기후 문제가 특히 심각하죠.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요. 어떤 의미에선 세상이 이렇게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소년과 소녀는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죠.”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2016)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열풍을 일으켰던 신카이 마코토(46) 감독이 새 영화 ‘날씨의 아이’(상영 중)로 한국을 찾았다. 비가 그치지 않는 자연재해 속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다. 30일 서울 송파구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카이 감독은 “일본에서는 이제 자연재해가 삶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돼 버렸다”며 “그래서 날씨라는 주제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끝없이 비가 내리는 도쿄의 어느 여름날, 어린 동생과 단둘이 사는 소녀 히나와 갈 곳 없이 떠돌던 가출 소년 호다카는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다. 비를 멈추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히나는 호다카에게 밝은 햇살을 선물하고, 두 소년 소녀는 맑은 날씨를 판매하는 작은 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히나의 능력에 숨겨진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히나와 호다카에게 가슴 아픈 비극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 미디어캐슬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날씨의 아이’. 미디어캐슬 제공

전작 ‘너의 이름은.’은 혜성 충돌로 한 마을이 사라지는 대재앙을 막기 위해 소년과 소녀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교감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서 크게 반향을 일으켰고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에서도 37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1위에 올랐다. 신카이 감독은 ‘날씨의 아이’에서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본다.

“이 영화로 과연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사실 자신은 없습니다. 어쩌면 현재 사회에 대한 반발심이 더 많이 담겼다고도 볼 수 있어요. 정치인이든, 유명인이든, 아니면 일반인이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미디어가 일제히 공격을 쏟아부어 한 사람의 인생이 산산조각 나는 걸 많이 목격했어요. 영화 속에서 호다카는 누군가는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해도, 소중한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어요. 호다카를 통해서 이 사회에서 느끼는 숨막힘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너의 이름은.’에서 ‘날씨의 아이’ 사이 3년간 변한 사회 분위기도 주인공 캐릭터에 반영됐다.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히나와 호다카는 이 시대 청춘들의 현실과 포개진다. 신카이 감독은 “가난하고 힘든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하는 주인공들을 그렸다”고 말했다. “‘너의 이름은.’을 만들 당시엔 관객들이 영화 속 공간과 배경을 동경하길 바라는 마음에 반짝거리는 느낌으로 표현했어요.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더군요. 요즘 청년들은 동경하는 대상을 보더라도 어차피 불가능할 거라 여기고 많은 걸 포기하며 살고 있죠.”

세상을 구원하는 주체로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환경 문제든, 정치 문제든, 어른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아이들에게 미루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 많이 생각했어요.”

영화가 주는 감동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신카이 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작화 때문이기도 하다. 실사를 방불케 하는 섬세한 표현으로 사물과 날씨, 일상을 묘사하는 신카이 감독에겐 ‘빛의 마술사’ ‘배경의 신’이라는 애칭이 따라다닌다. ‘너의 이름은.’에선 영화 속 배경을 방문하는 ‘성지순례’가 유행했을 정도다. ‘날씨의 아이’에서도 10만장에 이르는 자료 사진과 헬기로 공중에서 촬영한 도쿄 전경 등을 3D로 구현해 작화에 활용했다고 한다.

당초 ‘날씨의 아이’는 이달 초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한 달가량 미뤄졌다. 신카이 감독의 내한도 어렵게 성사됐다. 경색된 한일 관계가 문화 예술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신카이 감독은 “15년 전 첫 장편 영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 때부터 한국 관객들이 사랑해 준 것을 잊지 않고 있다”며 “‘너의 이름은.’ 개봉 당시 한국 관객에게 3년 뒤 신작과 함께 꼭 다시 한국을 찾겠다고 말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며 웃음 지었다. 신카이 감독은 1박2일 짧은 일정에도 관객과의 대화에 여섯 번이나 참여했다.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도 신카이 감독의 의지로 다급하게 결정됐다. 신카이 감독은 “3년 뒤에는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좋아지기를 바란다”며 “그때 신작을 들고 한국에 다시 찾아와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마지막으로 전했다.

김표향 기자 su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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