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시민이 짓고 지킨 드레스덴 성모교회(10.30)

입력
2019.10.30 04:40
30면
0 0
드레스덴 성모교회가 2차대전 연합군 폭격에 무너진 지 만 60년 만인 2005년 10월 30일 복원됐다. dresden.de
드레스덴 성모교회가 2차대전 연합군 폭격에 무너진 지 만 60년 만인 2005년 10월 30일 복원됐다. dresden.de

독일 드레스덴 성모교회(Dresden Frauenkirche)가 2차대전 연합군 폭격으로 무너진 지 만 60년 만인 2005년 10월 30일 복원됐다.

‘슈타이넌느 글로케(Steinerne Glocke, 석종)’라 불리는 97m 높이의 사암 돔 성모교회는 드레스덴 시민에겐 역사적 의미를 지닌 빼어난 바로크 건축물이기 이전에, 영혼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루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로 개종한 드레스덴 시민들이 헌금을 모아,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톨릭 교회를 헐고 지은 교회였다. 1743년 완공된 교회는 10여 년 뒤 시작된 ‘7년 전쟁(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의 프러시아 포격서부터 2차 대전까지 200년 도시 역사의 현장으로 건재했다. 하지만 1945년 2월 13일 시작된 영미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는 버티지 못했다. 성모교회의 웅장한 돔을 지탱하던 8개 돌기둥은, 시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회 신도들이 다 대피할 때까지 65만 개 소이탄 화염과 충격을 버틴 뒤 만 이틀 만인 15일 오전 10시 무렵 무너졌다고 한다.

시민들은 잔해를 뒤져 부서지지 않은 벽돌 등 8,500여개 건물 조각을 모아 하나하나 번호까지 매겨 간직했다. 전후 동독 정부가 그 터를 밀고 공영주차장을 지으려 하자, 시민들은 정부의 반종교 이념에까지 맞서 가며 저항했다. 동독 정부는 1966년 그 터를 ‘반전 유적’으로 공식 지정했고, 시민들은 1982년 반정부 평화운동과 시민권 촛불시위 등의 무대로 그 터를 활용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 드레스덴 시민들이 모여 환호한 곳도 성모교회 터였다.

보존된 설계도대로 1994년 성모교회 복원 공사가 시작됐다. 총 공사비 1억8,000만유로 중 절반 이상이 시민 기부금으로 충당됐다. 독일 출신 미국인 의학자로 전쟁 전 성모교회의 추억을 간직한 귄터 블로벨은 1999년 노벨 생리의학상 상금 100만달러 전액을 기부했다. 설계도에 없는 정문 부조를 복원하기 위해 시민들은 부모의 사진첩을 뒤져 교회를 배경으로 찍은 결혼 사진을 건축팀에 전달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구한 옛 벽돌 가운데 기능적 하자가 없는 3,800여개가 재활용됐다. 부활한 교회 외벽의 검은 점들이 60년 전, 아니 270년 전의 그 벽돌들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