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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슈 본 “유약한 왕자가 매료된 백조, 여성 아닌 남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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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슈 본 “유약한 왕자가 매료된 백조, 여성 아닌 남성으로”

입력
2019.10.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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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조의 호수’ 연출 매슈 본 인터뷰 

 9~20일 서울 LG아트센터서 공연 

1995년 '백조의 호수' 초연 당시 매슈 본과 배우의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1995년 '백조의 호수' 초연 당시 매슈 본과 배우의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사람들이 기억하는 기존 ‘백조의 호수’ 이미지를 지워버릴 아이디어가 필요했죠. 남성 백조를 출연시키고, 고전의 스토리를 영국 왕실 스캔들 일화로 바꿔버린 이유예요.”

1995년 11월 영국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초연된 ‘백조의 호수’는 20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 작품이다.

우선 극의 스토리. 낮이 오면 백조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와 그를 구하려는 지그프리트 왕자, 이들을 지배하려는 악마의 이야기가 주인 원작과 달리,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나약한 영국 왕실 왕자의 이야기가 근간이 된다. 또 하나, 백조의 모습. 왕자가 왕실 삶에 염증을 느껴 목숨을 버리려 하는 순간 호숫가에서 만난 백조는 원작의 가녀린 여성이 아닌, 강인한 남성이다.

매슈 본이 연출한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매슈 본이 연출한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최근 이메일로 만난 ‘백조의 호수’의 연출가 매슈 본은 “작품을 만들 때(1990년대 초) 영국에선 다이아나비와 찰스 사라 퍼거슨, 마가렛 공주에 대한 뉴스가 가득했다”며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없고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던 왕자를 내세운 것은 당시로선 매우 시사적인 주제였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연출은 초연 전까지만 해도 공연계 안팎에 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다. 번번이 여왕(어머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왕자의 캐릭터나 왕자가 결혼을 원했던 여자친구가 왕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쳐지는 시놉시스 등이 당시 영국 왕실 상황과 상당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왕자가 꿈에서 본 백조와 꼭 닮은 낯선 남자가 나타나 여왕을 유혹하는 장면 등 민감한 묘사도 있다. 연출가 본은 “왕실 스캔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굉장히 화제가 될 것이라고 봤다”며 “실제로는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남성 백조에 시선이 쏠렸고, 기존 ‘백조의 호수’를 머리 속에서 지우겠다는 작품 의도가 현실화됐다”고 했다.

매슈 본이 연출한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매슈 본이 연출한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본은 ‘백조의 호수’ 외에도 고전 원작을 창의적으로 각색하는 작업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1992년엔 ‘호두까기 인형!’ 속 중산층 가정을 고아원으로 옮겨 고아원 원장의 박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녀 클라라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대표적 낭만 발레 ‘라 실피드’ 역시 스코틀랜드 도시 글라스고우의 클럽을 배경으로 한 ‘하이랜드 플링’으로 개작하기도 했다.

‘백조의 호수’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장르도 독특하다. 본은 안무가 아담 쿠퍼와 작품을 완성했는데, 이들은 무용 공연을 본 적 없는 이들도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듯 무용을 즐길 수 있게 만들기로 결심하고 고전발레나 현대무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정형화된 동작을 일체 배제했다. 대신 발레, 현대무용, 뮤지컬, 영화, 탭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했고 직관적인 동작을 중심으로 꾸려 친숙함을 더했다. 공연계는 ‘백조의 호수’의 이러한 형식을 댄스 뮤지컬로 칭한다.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에서 주연 백조 역을 맡은 맥스 웨스트웰. LG아트센터 제공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에서 주연 백조 역을 맡은 맥스 웨스트웰. LG아트센터 제공

작품이 초연된 지 24년이나 지난 만큼 본은 무대 구성 등에서 수정 작업을 거쳤다. 그는 “무대ㆍ의상 디자이너인 레즈 브라더스톤과 저는 작품에 또 한번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 일부 변화를 줬다”며 “조명 디자인부터 배우 캐스팅까지 작품의 큰 골격은 유지하되 작은 부분에서 수백 가지 변화를 줘 또 다른 즐길거리가 더해졌다”고 전했다. 주역인 ‘백조’ 역에는 윌 보우지어, 맥스 웨스트웰이 새로 합류했다.

'백조의 호수'를 연출한 매슈 본(오른쪽)의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백조의 호수'를 연출한 매슈 본(오른쪽)의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본은 ‘백조의 호수’의 장수 비결에 대해 “말보다 보편적인 움직임의 미학 덕”이라고 표현했다. “젊었을 때 나는 말하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를 대사 없이 전달하는 것은 훨씬 도전적인 일이고 여전히 저를 흥분시킵니다. 이 작품은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영감을 줍니다. 부모님과 함께 극장에 와 처음 본 무용 작품이 ‘백조의 호수’였던 여러 배우가 어느새 작품 속 출연자가 돼 있는 것처럼요.” 9년 만에 내한하는 ‘백조의 호수’는 10월 9일부터 20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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