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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 “헐렁하지만 유머 있는 캐릭터에 정이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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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 “헐렁하지만 유머 있는 캐릭터에 정이 갔어요”

입력
2019.09.04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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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차승원은 “결핍이 있지만 마음 따뜻한 캐릭터에 끌린다”며 “척박하고 흉흉한 세상이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차승원은 “결핍이 있지만 마음 따뜻한 캐릭터에 끌린다”며 “척박하고 흉흉한 세상이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관록과 여유, 자기 앞의 생을 힘껏 살아 낸 이에게만 주어지는 덕목이다. 바로 지금, 배우 차승원(49)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두 단어이기도 하다.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와 ‘스페인 하숙’을 보며 시청자들이 위로를 얻는 것도, 분주하지 않게 소박한 밥 한끼를 차려 내는 그의 손길에서 순리를 따르는 삶의 태도가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평소 그의 인생관 그대로 말이다.

차승원이 ‘착한 영화’와 ‘착한 사람’에 마음이 기우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11일 개봉)도 “이야기가 품은 선한 의지와 이계벽 감독의 순수한 성품에 반해” 출연했다고 한다. 2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차승원은 “이 감독은 곁에 두고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이라며 “개인적으로 큰 욕심은 없지만 이 감독처럼 착한 사람이 잘되는 모습은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차승원은 사고 후유증으로 지적 장애를 갖게 된 주인공 철수를 연기한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팔뚝으로 손칼국수를 만들며 동생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철수 앞에 어느 날 존재조차 몰랐던 딸 샛별(엄채영)이 나타난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샛별은 친구 생일 선물로 줄 이승엽 선수의 사인볼을 구하러 몰래 병원을 나서고, 철수가 우연히 샛별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진다.

아이 같은 아빠와 어른스러운 딸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며 가족이 돼 간다. NEW 제공
아이 같은 아빠와 어른스러운 딸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며 가족이 돼 간다. NEW 제공

영화는 전반부에 어수룩한 모습으로 동네를 활보하는 철수를 비추며 웃음을 자아내다가, 후반부에선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철수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소방관이었고 숨겨진 사연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좀처럼 눈물을 참기가 어려워진다. 사건 당시 지하철 통로로 진입해 기계실에 갇혀 있는 12명을 구출한 소방관의 실화가 철수 캐릭터에 토대가 됐다. “반전을 지나치게 인식하지 않으려 했어요. 하지만 가슴 아픈 사건을 왜곡하거나 훼손하는 건 아닌지 조심하면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께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하고 있는지, 이 영화의 진심이 잘 전달됐으면 합니다.”

사회적 참사를 다루지만 코미디가 불편하지 않고, 눈물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겹지는 않다. “실제 사건만으로도 충분히 슬픈데 감정을 더 부추겨서는 안 된다”며 차승원이 담백하게 연기했기 때문이다. 철수가 아픈 샛별이를 등에 업기는 해도 품에 안아 주는 장면이 없다. 심지어 손도 안 잡는다. 그래도 부녀의 동행은 충분히 살갑다. “결핍이 많은 아빠와 딸이 이 험한 세상에서 서로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싶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존재만으로도 너무나 큰 힘이 되잖아요. 살면서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요. 비록 부족한 아빠라 하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요. 상처가 많은 두 사람이 앞으로도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더는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했어요.”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추석 연휴에 개봉한다. 무해한 영화라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좋다. NEW 제공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추석 연휴에 개봉한다. 무해한 영화라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좋다. NEW 제공

차승원이 빚어낸 인물은 특유의 인간미를 품고 있다. 실제 차승원이 오롯하게 포개진다. 그는 “결핍은 있지만 유머가 있고 어딘가 헐렁한 캐릭터에 정이 간다”며 “그런 캐릭터를 연기할 때 아이디어도 훨씬 풍성해진다”고 했다. 그가 ‘휴먼 코미디’ 장르에서 더욱 돋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신라의 달밤’(2001)과 ‘광복절 특사’ ‘라이터를 켜라’(2002) ‘귀신이 산다’(2004) ‘선생 김봉두’(2003) ‘이장과 군수’(2007) 등 2000년대 초중반 충무로의 코미디 부흥기를 이끈 그에게는 ‘코미디 장인’이란 수식도 따라다닌다. 요즘 찍고 있는 ‘싱크홀’도 재난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웃음을 버무려 그려낸 코미디 영화다.

카메라 앞에서 망가지는 데 주저함이 없는데도 차승원이란 이름엔 묘한 신비감이 서려 있다. 그는 짐짓 어깨에 힘을 주더니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이는지 대충은 알지만, 어쩐지 낯간지러워요. 그러나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외모와 행동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가능하면 술자리는 피하고, 날마다 정해진 운동을 습관처럼 해요. 저를 봤다는 목격담도 장소가 주로 마트나 식당이더라고요(웃음). 저도 운동하는 게 피곤하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도 해요.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더 찜찜해요. 몸을 관리하는 건 배우로서 당연한 의무라 생각해요.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제 몸을 신성한 사원처럼 여기려고 합니다.”

1988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모델로 데뷔했고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단역을 맡으며 연기를 시작했다. 차승원은 ‘데뷔 31년’이란 말에 한사코 손을 저으며 “청초해 보이도록 ‘23년차 루키’를 꿈꾸는 배우로 써 달라”고 우스갯소리를 보탰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비교적 나이를 잘 먹고 있는 것 같아요. 과거엔 주목받기를 원하기도 했지만 이젠 부담스러워요. 크게 기쁜 일도, 크게 슬픈 일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 요즘의 삶이 참 좋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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