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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하다 중재 나선 美, 日 돌려 세우기 타이밍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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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하다 중재 나선 美, 日 돌려 세우기 타이밍 놓쳤다

입력
2019.08.02 18:57
수정
2019.08.02 21:2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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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AP 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AP 연합뉴스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2일 일본 정부 결정을 앞두고 휴전을 제안한 미국의 중재 시도는 일본의 거부에 따라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로 빚어진 한일 갈등 초기 다소 방관하던 미국이 뒤늦게 ‘분쟁 중지 협정(standstill agreement)’ 카드를 꺼내며 관여 수위를 높이긴 했으나 결국은 시기를 놓친 셈이 된 것이다. 추가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한일 양국의 입장 차가 워낙 커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일본의 각의 결정을 코앞에 두고 중재에 나선 미국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일본 각의 전날인 1일 분쟁 중지 협정을 거듭 촉구하면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위협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우려하고 있다”며 일본의 조치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도 이날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강행하고 한국 내에서 반 일본 정서가 커지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가 실무급에서 고위급까지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태국 방콕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중재 의욕을 보였고,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도 세미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본 외무성 관계자를 만나 미국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의 뒤늦은 관여는 이미 강행 방침을 굳힌 일본 정부를 돌려세우기에는 시기적으로 역부족이었다. 2일 저녁 열린 한미일 3국 회담 자체도 일본의 각의 결정이 나온 지 한참 뒤 열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미국도 이 상황에 대해 많은 우려를 갖고 있고, 앞으로 어렵지만 (미국이) 할 역할을 다 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미국 측 입장을 전했다.

체면을 구긴 미국으로선 일단 한일 양측 간 확전 자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계속 내겠지만 미국의 관여 수위를 두고선 관측이 엇갈린다. 1일 미국 일본 호주 외교장관 회담에서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을 만났던 폼페이오 장관은 이후 기자회견에선 “우리는 양국이 지난 몇 주간 발생한 갈등을 완화할 방법을 스스로 찾을 것으로 매우 기대한다”고 말해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전날 기내에서 한일이 좋은 지점을 찾도록 돕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피력했지만 일본의 중재 거부 입장을 확인하고 ‘한일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다시 돌아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이 ‘양국 간 해결’ 원칙을 내세우며 직접 개입은 자제하되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한일 양국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여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미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은 진작부터 유지 입장을 밝혀왔던 터라,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만큼은 건드려선 안 된다며 압박할 수 있다. 확전 자제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한국 정부로 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날 미 고위 당국자는 일본의 조치에 대한 우려뿐만 아니라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우려도 강력 표명했다. 이 당국자는 “한국 정부가 취한 조치의 일부가 한국 내 반일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정치적 효과를 목표로 했거나 심지어 이를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말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는 실질적인 경제 피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을 수 있다. 미 고위 당국자는 “한일 무역 관계의 악화가 '눈에는 눈(tit-for-tat)'식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면 양국의 경제와 그 이상에 부정적 여파를 가져올 수 있다"며 미국 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미국이 한일간 불붙은 무역전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본격적으로 관여할 여지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일본이 이제 막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내놨고, 이에 대한 한국의 카드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라며 “미국이 당장 구체적 중재안을 갖고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조영빈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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