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보석 석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약 한달 가량 남은 구속만료 기간 전까지 재판을 마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양 전 대법원장도 이명박 전 대통령 경우처럼 조건부 보석을 인정받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지난 12일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등 혐의 공판에서 검찰과 변호인 측에 양 전 대법원장의 신병 관련 의견서를 내달라고 요청하면서 직권 보석 가능성을 시사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구속 상태에서 재판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아무리 서둘러 재판한다고 해도 선고까지 구속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는 다들 동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기소일인 2월 11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다음달 11일 0시 구속기간이 만료되는데 재판 진행 속도를 본다면 구속만료 전까지 선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판부는 “어느 시점에서는 구속 피고인의 신체 자유를 회복시켜 주더라도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며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되든 보석으로 석방되든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도리어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될 경우 아무런 조건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재판부가 선제적으로 보석을 검토한다는 관측이다. 실제 구속기간 내에 판결을 내릴 수 없는 중대사건의 경우 구속 만료를 앞두고 조건부 보석을 허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앞서 3월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한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구속 만기로 석방할 경우 주거 또는 접견을 제한할 수 없어 오히려 증거인멸의 염려가 더 높다”면서 “보석 조건을 붙일 수 있는 보석 허가 결정이 형사소송절차 원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상황을 놓고 양 전 대법원장 측의 재판 지연 전략이 적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은 준비절차만 4개월을 끌다 지난 5월 말 시작됐지만 증인으로 소환된 현직 법관들의 불출석이 이어지는 등 재판이 계속 지연됐다. 검찰은 “구속 만료가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석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허가할 경우에도 이 전 대통령의 전례를 참고해 강도 높은 조건을 달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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