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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조업 어선 500척 침몰시킨 ‘인도네시아 바다의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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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조업 어선 500척 침몰시킨 ‘인도네시아 바다의 수호신’

입력
2019.06.10 09:00
수정
2019.06.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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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해양수산부 장관 “예외는 없다” 무관용 고수… 고교 중퇴 등 드라마틱한 인생 주인공

2014년 취임 직후 '불법 조업 어선 무관용 침몰 정책'을 시행해 현재까지 500척 넘게 불법 어선을 수장시킨 수시 푸지아스투티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 장관.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2014년 취임 직후 '불법 조업 어선 무관용 침몰 정책'을 시행해 현재까지 500척 넘게 불법 어선을 수장시킨 수시 푸지아스투티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 장관.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한 달 안에 30여척을 수장시킬 것이다.”

열흘이 넘는 인도네시아의 ‘르바란’ 황금연휴가 끝나기도 전에 불법 조업 어선에 대한 단죄가 선포됐다. 예외 없이 배에 구멍을 뚫거나 소각 또는 폭파로 수장시키는 것이다. 이번에도 강직, 정직, 성실, 추진력의 대명사인 ‘인도네시아 바다의 수호신’ 수시 푸지아스투티(54) 해양수산부 장관이 나섰다.

10일 자카르타포스트에 따르면, 수시 장관은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한 혐의로 요격되거나 나포된 뒤 법원에서 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대략 30척의 외국 선박을 침몰시킬 계획이라고 연휴 중인 6일 밝혔다. 이들 선박은 현재 칼리만탄(보르네오)섬과 술라웨시섬, 수마트라섬 인근 리아우제도에 있다. “대부분은 베트남과 중국에서 왔다”는 게 해양수산부 측 설명이다.

인도네시아 영해에 들어와 불법으로 조업하는 어선을 가차없이 침몰시키는 ‘무관용 정책’은 수시 장관이 2014년 취임하자마자 도입했다. 2016년엔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을 폭파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내보기도 했다. 당시 중국 어선을 계속 침몰시키는 것이냐는 질문에 “국적은 상관없다, 예외도 없다”고 단언했다. 지금까지 수시 장관이 침몰시킨 타국의 불법 조업 어선은 500척이 훌쩍 넘는다. 지난달에도 50여척을 가라앉혔다.

인도네시아 해양 경찰이 수마트라섬 인근에서 나포한 불법 조업 어선 3척을 태워 침몰시키는 장면.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인도네시아 해양 경찰이 수마트라섬 인근에서 나포한 불법 조업 어선 3척을 태워 침몰시키는 장면.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수시 장관은 “그것(불법 조업 어선 침몰시키기)은 국제사회에서 흔한 관례다. 우리나라 어부들의 배가 호주 해역을 침범한다면 그 배들은 즉시 불태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불법 조업은 해양자원 절도일 뿐 아니라 인신매매, 마약과 무기 밀매 등의 범죄로 이어지는 죄악덩어리”라는 게 수시 장관의 지론이다.

불법 조업 어선 침몰 정책의 성과는 수치로 드러난다. 외국 선박 1만 척 이상의 불법 영해 침범을 막아냈고, 불법 조업도 90% 가까이 줄였다는 게 인도네시아 정부의 평가다. 인도네시아의 어획량은 2015년 710만톤에서 2017년 1,250만톤으로 급증했다. 이른바 ‘수시 부인 효과’다. 1만7,500여개의 섬과 9만9,000㎞의 해안선을 거느린 인도네시아는 세계 6위의 바다영토 보유국가다.

인도네시아 해역을 침범해 조업을 하다가 나포된 뒤 폭파되고 있는 불법 조업 어선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인도네시아 해역을 침범해 조업을 하다가 나포된 뒤 폭파되고 있는 불법 조업 어선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수시 장관은 자신의 정책만큼 인생도 극적이다. 고교 중퇴, 이혼 등 세상 기준에 따르면 불리한 경력을 딛고 해산물 경매장에서 일하다 항공사를 세울 정도로 자수성가했다. 사회 공헌 활동도 꾸준히 했다. 정치적 배경이 전무했지만 2014년 당선된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장관 취임 이후엔 걸걸한 목소리에 거침없는 입담으로 줄담배를 피우고, 긴 치마와 바지로 가렸던 정강이 부위의 파란 새 모양 문신을 “답답해서 못 참겠다”고 드러내는 등 반항아 기질의 파격 행보로 남성 중심의 주류 무슬림 사회를 흔들었다. 2017년 BBC 선정 ‘영감을 주는 혁신 여성’에 인도네시아인으로 유일하게 선정될 만큼, 가장 일 잘하는 장관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친(crazy) 사람이지만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조코위 대통령의 찬사를 받으며, 올해 대선을 앞두고 조코위 측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수시 푸지아스투티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 장관이 인도네시아 영토와 영해가 그려진 지도 앞에 섰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수시 푸지아스투티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 장관이 인도네시아 영토와 영해가 그려진 지도 앞에 섰다. 자카르타포스트 캡처

지난해엔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학력이 가장 낮은 장관”이라고 스스로 낮추며 좌중을 웃겼던 수시 장관은 교육부 장관의 끈질긴 권유로 2015년 고교 졸업시험에 응시했으나 업무가 바빠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다시 틈틈이 공부해 3년 만에 졸업시험을 통과했다. ‘전국의 중퇴자들에게 싱싱한 자극이 됐다’고 전해진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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