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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中 깡통어음 사건’ 국내 증권사 직원들이 뒷돈 받고 어음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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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中 깡통어음 사건’ 국내 증권사 직원들이 뒷돈 받고 어음 팔았다

입력
2019.06.1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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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600억원 부도 

 한화ㆍ이베스트증권 2명이 

 中 발행 기업서 3~5억 받아 

 직원 비리 감시 못한 증권사는 

 “우린 책임없다” 버텨 파장 예상 

중국 기업어음 부도사건의 거래 흐름. 그래픽=신동준 기자
중국 기업어음 부도사건의 거래 흐름. 그래픽=신동준 기자

지난해 국내 증권사끼리 사고 판 각각 수백억원대의 기업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며 업계를 충격에 빠뜨린 1,600억원대 ‘중국 기업 어음 부도 사건’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어음을 판매한 국내 증권사 직원들이 애초 이 어음 발행을 의뢰했던 중국기업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돈을 챙긴 직원들이 투자상품으로 가치가 없는 사실상 ‘깡통어음’을 판 꼴인데도 해당 증권사들은 여전히 책임이 없다고 버티고 있어, 향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중국어음 부도 사건은? 

이 사건은 지난해 5월 8일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증권이 현대차증권(500억원), BNK투자증권(300억원), KB증권(200억원) 등 국내 6개 증권사에 총 1,600억원대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팔면서 시작됐다. 한화ㆍ이베스트증권은 특수목적회사(금정제십이차)를 세운 뒤, 중국 에너지기업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역외 자회사(CERCG캐피탈)가 발행한 회사채 1억5,000만달러어치(약 1,646억원)를 담보(기초자산)로 해당 어음을 발행해 판매했다.

그런데 어음을 판 지 3일 만에 CERCG의 또 다른 역외 자회사(CERCG오버시즈캐피탈)의 회사채가 부도를 맞는다. CERCG 본사의 지급보증이 실행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똑같은 구조로 CERCG의 지급보증을 받아 발행된 이 사건 어음도 자연히 부도 위기에 몰렸고, 실제 지난해 11월 9일 이 어음이 만기를 맞자 CERCG캐피탈은 원리금을 채권자들에게 돌려주지 못하고 CERCG 본사는 지급보증을 이행하지 않아 해당 회사채와 어음은 부도가 났다.

한화ㆍ이베스트증권은 “우리는 단순 중개 역할만 해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액이 가장 컸던 현대차증권은 애초에 상품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두 증권사 직원들을 고소했다. 수사에 착수한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압수수색까지 벌였다.

 ◇중국 기업에서 수억원 받은 실무 직원들 

9일 본보의 취재 결과, 경찰은 이베스트증권 실무 담당직원 A씨가 어음 발행 이후 자신의 가족 계좌로 CERCG로부터 3억~5억원가량의 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또 A씨가 이 돈을 한화투자증권 담당 직원 B씨와 나눠 가진 사실도 밝혀냈다.

경찰은 두 직원이 CERCG로부터 뒷돈을 받은 대가로 CERCG캐피탈 회사채를 무리하게 어음화해 국내 증권사들에 판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음 부도의 결정적인 원인인 CERCG의 지급보증이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ERCG 본사의 지급보증이 실행되려면 중국외환국(SAFE)의 승인이 필요하다. 중국은 자본 유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에, 돈이 중국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지급보증의 경우 반드시 허가를 받게 한다. 그런데 SAFE에는 CERCG 본사의 지급보증을 승인한 이력이 없었다. 경찰은 뒷돈을 받은 두 직원이 어음을 사 간 증권사들에 ‘중국외환국 승인’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두 직원은 경찰 조사에서 “돈을 받지도 않았고, 판매 과정에서 중국외환국 승인 관련 규정도 설명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어음을 산 증권사들은 “중국외환국 승인 관련 규정을 설명받지 못했다”고 경찰 참고인 및 대질 조사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뒷돈이 오간 증거가 확실한 만큼, 이를 종합해 두 직원이 뒷돈의 대가로 사실상 ‘깡통’인 어음을 ‘중국 공기업의 지급보증이 붙은 좋은 어음’이라고 속여 판매한 혐의(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사기 및 수재)를 적용해 막바지 수사를 진행 중이다.

 ◇판매 증권사 리스크 관리 안 해… 금감원 검사 예정 

업계에서는 두 직원의 일탈 못지않게, 어음을 판 한화ㆍ이베스트증권이 소속 직원의 비리와 판매상품(어음)의 문제점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는 점 또한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 피해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가 통상 수십억원대 상품을 팔 때도 내부 리스크 협의 절차를 거치는데, 한화투자증권은 ‘우리는 단순 중개인이라 리스크협의회를 열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화투자증권은 약 1,600억원을 먼저 특수목적회사에 대출해 CERCG에 회사채 발행자금을 조달해 주고, 어음을 사간 증권사들에 돈을 받았다.

업계에선 당국의 관리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중국 등 외국 기업 채권을 유동화할 때, 판매 증권사가 리스크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깡통 채권, 어음이 나돌 수 있다”며 “이번 사건 같은 상품은 대부분 공모가 아닌 ‘사모’ 형태로 거래가 이뤄져 담당자 몇 명이 짜고 칠 여지도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도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금감원은 경찰 수사가 종료되는 대로 한화ㆍ이베스트증권이 어음 판매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에 소홀한 점이 있었는지, 법 위반 사항이 있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검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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