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기고] 과학적 근거도 진단기준도 불명확한 게임 이용장애 질병화

알림

[기고] 과학적 근거도 진단기준도 불명확한 게임 이용장애 질병화

입력
2019.05.27 14:06
수정
2019.05.27 14:07
0 0

세계보건기구(WHO)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 세계 게임업계는 그 동안 이번 논의 자체가 부당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 게임과 정신장애의 인과관계가 증명된 적이 없다는 점, 여타 질환과의 공존장애 가능성 등이 핵심이다. WHO가 제시한 진단기준도 불명확하며, 관련 연구가 한국・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국한되고 청소년이라는 특정 연령층에 집중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게임 이용이 질병으로 분류됨에 따라 3만 5,000여명의 게임산업 종사자들은 마치 유해물질 생산자인 양 취급당하고 수많은 게이머들이 잠재적 정신이상자, 혹은 중독환자로 내몰릴 위기를 맞게 됐다. 온갖 규제에 허덕이던 게임산업은 직격탄을 맞고, 콘텐츠산업 발전과 4차 산업혁명의 기회는 줄어들며, 무역수지와 일자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반면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이들은 ‘게임을 많이 하는 것도 병’이라는 주장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과학적 근거도, 임상자료도 불명확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각국 전문가 그룹의 소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질병을 하나 더 만드는 일에만 혈안이다.

이경민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장은 최근 토론회에서 사회적 문제를 모두 의료적 질병으로 규정하는 ‘과잉의료화’를 우려했다. 게임을 통한 청소년들의 자기통제력 발달과정을 무시한 채 단순히 병원과 약물치료에 매몰된다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사회학자인 피터 콘래드 박사는 ‘의료화’에 관한 30여 년 간의 연구를 모아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라는 책을 내놨다. 한국어판에서는 우리나라의 ADHD 관련 정신의학과 진료 건수가 2002년 1만6,266건에서 2011년 5만6,951건으로 10년 사이 350% 증가했다고 언급했다. 애초에 아동의 ‘성격’일 수도 있었던 것이 ‘질병’으로 자리매김하는 사례 중 하나로 제시됐다.

그와 비슷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올 초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아의 약 20%가 적대적 반항장애를 앓고 있다. 5명 중 1명꼴이니 초등학교 교실에는 최소 5~6명의 정신질환 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이 아이들이 모두 진짜 환자라면 큰 걱정이다.

청소년 정신질환에 관한 다소 비현실적인 통계의 말미에는 항상 ‘예방과 조기검진, 치료대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소견이 제시된다. 그렇게 아이들의 돌출행동은 질환이나 장애가 되고 수많은 아이들이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전문적 치료가 아니라도 스스로 치유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바로 ‘성장’이다.

의학과 의료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건강한 아이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 아이들이 ‘환자’라는 인식에 갇혀 도전과 모험을 포기한다면 국가적 손실이 될 것이다. 명확한 진단기준도, 부작용과 우려에 대한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게임질병화가 우려될 뿐이다.

강신철 한국게임산업협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