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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마음껏 사먹고 싶다” 소박한 자유 외치는 중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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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마음껏 사먹고 싶다” 소박한 자유 외치는 중국인들

입력
2019.05.20 15:00
수정
2019.05.20 19:4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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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의 한 대형식품매장. 사과(진열대 맨 왼쪽) 1근(500g) 가격이 10위안(약 1,720원)을 훌쩍 넘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10위안이면 2~3근을 살 수 있었던 대표적 서민과일이다.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의 발길이 뜸하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한 대형식품매장. 사과(진열대 맨 왼쪽) 1근(500g) 가격이 10위안(약 1,720원)을 훌쩍 넘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10위안이면 2~3근을 살 수 있었던 대표적 서민과일이다.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의 발길이 뜸하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그래도 과일은 부담 없었는데, 이제는 손이 잘 안 간다.”

중국 베이징에 사는 여성 회사원 샤(夏ㆍ24)씨는 한 달 5,000위안(약 86만원)을 벌어 절반을 먹는데 쓴다. 팍팍한 살림이지만 퇴근 후 값싼 과일을 베어 물며 고단함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바뀌었다. 과일 값으로 매달 150위안(약 2만5,000원)이면 충분했는데 이제는 250위안으로도 부족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1㎏에 5위안이던 사과, 배의 가격이 올해는 11위안으로 두 배나 올랐다. 20일 마트에서 만난 샤씨는 “이번 달에는 과일을 아예 사먹지 않았다”며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중산층 주부 리(李ㆍ52)씨도 매달 과일 구입에 1,200위안(약 20만원)가량을 쓴다. 함께 사는 며느리가 임신한 탓에 거의 매일 시장에 가서 80위안(약 1만4,000원)을 쓴다. 예전에는 이것저것 한 바구니 가득 담았지만 요즘은 기껏해야 수박 한 통 값이다. 체리 같은 수입과일이 도처에서 시선을 끌지만 남편과 아들의 수입을 합한 월 2만위안으로는 버겁다. 그래서 오늘도 5위안이면 1㎏을 살 수 있는 토마토를 골랐다. 리 씨는 “과일뿐만 아니라 채소 가격도 많이 올랐다”며 “곧 손주가 태어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과일매장 주인은 “과일값이 오르는 건 우리도 달갑지 않다”며 “하루 매출이 평균 600위안이나 줄었다”고 거들었다.

과일을 풍족하게 차려놓고 마음껏 먹는 건 중국 서민가정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과일 몇 조각 썰어놓고 맛만 보는 한국이나 일본을 바라보며 내심 우월의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과일값이 눈에 띄게 오르면서 예전처럼 넉넉히 과일을 내놓는 건 호사로 비칠 정도다.

‘과일 자유(水果自由)’. 올해 들어 중국인 사이에 부쩍 회자되는 말이다. 자유롭게 과일을 사먹을 수 있다는 의미다. 소득이 낮을수록 과일에 대한 열망은 더 강렬하다. 과일 자유를 누리는 ‘과일 귀족’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지난 10여년간 중국 과일값은 꾸준히 4~9배 정도 올랐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유독 상승세가 가파르다. 사과의 경우 지난해보다 공급량이 30%가량 감소하더니, 4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평균 가격이 78%나 상승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은 2~3년 전까지만 해도 서북지역을 개간하고 구릉지에 수목을 심어 과일 생산량을 매년 대폭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환경보호와 녹지 확충을 앞세운 정책에 따라 과수원을 보기 좋은 정원이나 경관림으로 대폭 바꿨다. 또 중국은 곡물의 경우 일정 규모의 경작지를 보호하지만 과일은 쏙 빠져 있다. 더구나 한국ㆍ일본과 달리 재배하는 농민에게 주는 보조금도 없다. 기존 과수원도 규모가 작고 생산성이 떨어지다 보니 농민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시로 떠나는 실정이다. 게다가 지난 겨울 강한 서리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생산이 급감해 설 연휴가 지나도 과일값이 도통 떨어지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으로 돼지고기 값이 10% 이상 오른 데 이어 ‘믿었던’ 과일마저 등을 돌린 셈이다.

반면 외국산 과일 수입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체리는 무려 32배나 수입량이 증가했다. 전체 수입과일로 따지면 34%가량 성장했다. 소비여력을 갖춘 중산층이 그만큼 늘어난 탓이다. 하지만 운송기간이 길어도 상하지 않는 바나나를 제외하면 다른 수입과일은 중국산에 비해 2~3배 가격이 높아 여전히 부담스럽다. 올해 1분기 중국인 1인당 가처분소득은 평균 8,493위안, 소비지출은 5,538위안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년 퇴직한 주부 왕(王ㆍ65)씨는 “체리는커녕 사과를 집으려다 오이나 무를 들고 집으로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인의 식습관 불균형마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마침 20일은 ‘중국 학생 영양의 날’이다. 중국 영양학회는 13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인은 소금 섭취가 많고 채소ㆍ과일은 외면해 인구 대국 가운데 심장혈관 질환과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전 세계 1위”라며 “매일 채소는 300~500g, 과일은 200~350g씩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5일 “극단적 날씨와 같은 계절적 요인 때문에 과일 가격이 오른 것”이라며 “곧 예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졸지에 과일 자유를 잃어버린 민심은 상당 기간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일 생산이 집중된 윈난(雲南)성이 올봄에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 지역 기상관측소 가운데 10곳은 특급가뭄지역, 110곳은 가뭄지역으로 분류됐다. 농경지 30만㎡가 피해를 입고 31만명의 주민이 식수난을 겪으면서 올여름과 가을에 출하될 과일 생산에도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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