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연기하다, 제작하다, 소설쓰다 영화감독이 됐다

알림

연기하다, 제작하다, 소설쓰다 영화감독이 됐다

입력
2019.04.09 04:40
21면
0 0

오랜 꿈 이룬 늦깎이 신인감독들

연극 연출 경험있는 배우 김윤석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 데뷔

연극 연출도 했던 배우 김윤석(오른쪽)은 동명 희곡을 각색한 영화 ‘미성년’으로 영화 연출자로 데뷔했다. 쇼박스 제공
연극 연출도 했던 배우 김윤석(오른쪽)은 동명 희곡을 각색한 영화 ‘미성년’으로 영화 연출자로 데뷔했다. 쇼박스 제공

메가폰을 잡기 전 그들은,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명배우(김윤석)였고,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유명 제작자(조철현)였으며,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인기 작가(천명관)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새로운 이름, ‘영화감독’으로 불리고 있다. 50대(김윤석ㆍ천명관) 혹은 60대(조철현) 늦은 나이에 감독 데뷔를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영화계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뛰어넘어 오랜 꿈을 이룬 늦깎이 신인 감독들의 도전정신이 충무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여러 영화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쳐 온 김윤석은 첫 번째 연출작 ‘미성년’으로 11일부터 관객을 만난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가, 주리 아빠 대원(김윤석)과 윤아 엄마 미희(김소진)의 불륜 관계를 알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미희가 임신까지 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는 아이들과 현실을 회피하기만 하는 어른들을 대비시키며 영화는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기성세대를 풍자한다.

영화계 진출 이전 연극 연출도 했던 김 감독은 2014년 젊은 연극인들의 창작극 발표 무대에서 ‘미성년’을 보고 영화로 만들 결심을 했다. 3년여간 희곡 원작자인 이보람 작가와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했다. 영화사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는 “김 감독은 기획자와 각본가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역량이 뛰어난 영화인이자 준비된 연출자”라며 “시나리오만 봐서는 간과하기 쉬운 대사의 행간 의미까지 담아 캐릭터를 구축하고, 아주 섬세하게 연기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에 출연 배우와 스태프들이 감탄한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영화 ‘나랏말싸미’ 주연배우 박해일(왼쪽부터)과 송강호, 연출자 조철현 감독(오른쪽).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나랏말싸미’ 주연배우 박해일(왼쪽부터)과 송강호, 연출자 조철현 감독(오른쪽).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풍부한 현장 경험은 늦깎이 신인감독들의 가장 큰 자산이다. 올여름 개봉을 준비 중인 영화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의 영화 경력은 30년에 달한다. 영화사 총무과 직원으로 입사해 영화 일을 시작한 이후 홍보, 마케팅, 배급, 외화 수입, 번역, 기획, 제작, 시나리오까지 전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심지어 연기(‘부당거래’ 카메오)도 했다. ‘님은 먼 곳에’(2008) ‘달마야 서울 가자’(2004) ‘황산벌’(2003) 등을 제작했고, ‘사도’(2015)와 ‘평양성’(2011)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등 수많은 시나리오를 썼다. 연출은 조 감독에게 유일한 미답의 영역이었다. 조 감독은 “제작자로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감독의 고뇌를 지켜봤지만 연출의 내밀한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도움을 주지 못한 적이 많았다”며 “평생 해 온 영화 일의 일환으로 한 번쯤 연출을 경험하고 싶은 바람이 싹텄다”고 말했다.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는 작품이다. 송강호와 박해일이 조 감독의 데뷔에 힘을 보탰다. ‘나랏말싸미’ 제작을 맡은 영화사 두둥 오승현 대표는 “영화계 신의가 두터운 조 감독에게 오래전부터 후배 영화인들이 연출 도전을 권유해 왔다”며 “조 감독이 이제는 연출을 통해서도 한국영화의 외연을 넓히는 데 또 다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 ‘뜨거운 피’를 연출하는 소설가 출신 천명관 감독(왼쪽 세 번째)과 주연배우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영화 ‘뜨거운 피’를 연출하는 소설가 출신 천명관 감독(왼쪽 세 번째)과 주연배우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지난달 말부터 영화 ‘뜨거운 피’ 촬영에 돌입한 천명관 감독은 소설가로 더 유명하다. 2004년 장편소설 ‘고래’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와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등을 발표했다. ‘고령화 가족’은 2013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소설가가 영화 연출에 도전한다는 게 특이한 일처럼 다가오지만 천 감독은 원래 영화인이었다. 서른 살에 영화 일을 시작해 ‘북경반점’(1999)과 ‘총잡이’(1995) 시나리오를 쓰며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연출이라는 꿈을 품고 10년간 분투했으나 마흔 즈음 경제적 어려움에 영화를 포기했다. 그리고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소설가가 됐다. 천 감독은 “쉰 살이 넘으면서 잊고 지냈던 꿈이 다시 떠올라 5년 전 즈음 시나리오를 썼는데 결국 투자를 받지 못했다”며 “2년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영화 제작자에게서 연출 제안을 받아 뜻하지 않게 못 다 이룬 꿈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천 감독의 데뷔작 ‘뜨거운 피’는 1990년대 부산 변두리 출신 한 남자가 조직 간 암투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김언수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천 감독은 “내 시나리오로 연출하겠다는 고집이 있었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영화감독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며 웃음 지었다.

김윤석과 조철현, 천명관 외에도 배우 정진영과 소설 ‘아몬드’로 유명한 작가 손원평도 각각 ‘클로즈 투 유’와 ‘도터’로 영화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다. 영화계는 색다른 이력을 지닌 감독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동하 대표는 “다른 직업군에서 내공을 쌓은 감독들의 색다른 시선과 독창적인 이야기는 한국영화 산업에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된다”고 평가했다. 오승현 대표도 “자본의 논리에서 밀려난 이야기 소재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봤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중소 규모 영화들이 생존을 위해 스타마케팅에 기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며 “데뷔를 준비 중인 예비 감독들에게 긍정적 자극이 되고 또 다른 기회가 창출되는 순기능으로 작동돼야 산업도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