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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대신 소통… 리치강ㆍ할담비 ‘액티브 시니어’에 美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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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대신 소통… 리치강ㆍ할담비 ‘액티브 시니어’에 美쳤어

입력
2019.04.02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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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들. 신동준 기자
액티브 시니어들. 신동준 기자

얼굴을 쓸어 내리는 손짓이 요염하다. 댄스 비트에 맞춰 좌우로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은 ‘춤꾼’이 따로 없다. 지병수(77)씨는 지난달 24일 KBS1 노래 경연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손담비의 히트곡 ‘미쳤어’를 부르며 ‘실버 아이돌’이 됐다.

팔순을 앞둔 지씨는 ‘막춤’이 아닌, 야무진 손동작과 농익은 리듬감으로 ‘미쳤어’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화제를 모았다. 온라인엔 ‘한국적인 스웨그(Swagㆍ뻐김)가 넘쳐난다’는 글이 쏟아졌다. 지씨에겐 ‘할담비’란 별명까지 생겼다. 지씨는 손담비와 29일 KBS2 연예 프로그램 ‘연예가중계’에서 같이 춤도 췄다. 지씨는 31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담비씨가 10년 만에 다시 노래를 띄워줘서 고맙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지씨는 18년 동안 취미로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매방 선생께 살풀이춤 등 전통무용을 배웠다”고 했다. 지씨는 노래방에서 카라의 ‘미스터’와 티아라의 ‘더비더비’를 즐겨 부른다. 그는 스스로를 ‘올드 보이’(Old boy)가 아닌 ‘하프 보이’(half boyㆍ반 젊은이)로 여긴다.

깜짝 스타가 된 지씨의 사례는 최근 대중문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남의 시선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청년 문화 소비에 적극적이라면 노년이라도 젊은 층의 환호를 받으며 대중문화 중심에 설 수 있다. 깊은 이마 주름과 수염이 인상적인 김칠두(64)씨가 지난해 모델로 데뷔해 대중의 시선을 끌고 있는 점도 맥락이 같다.

 ‘버럭’과 ‘주책’ 대신 소통 

연예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활동적인 노년, 즉 ‘액티브 시니어’의 활약은 방송계에서 도드라진다. 배우 강부자(79)는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2’에서 네티즌과 축구를 소재로 대화하며 세대 차이를 허문다. 카리스마 넘치는 노년 남성의 상징이었던 배우 이덕화(67)는 KBS2 예능프로그램 ‘덕화TV’에서 음식을 만들고 뜨개질을 배우며 가장의 근엄함을 내려놓았다.

‘욕할매’는 없다. 배우 김수미(70)는 케이블채널 tvN 예능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에서 인심 좋게 집 반찬을 만든 뒤 자식 같은 후배들을 대접한다. 액티브 시니어들의 활약은 버럭과 주책으로 굳어졌던 노년의 이미지를 확 바꿨다. 강부자 등은 소통의 아이콘이 돼 노년과 청년의 다리 역할을 한다. 10~30대 시청자를 잡기 위해 젊은 연예인 모시기에 급급했던 예능프로그램의 변화다.

‘경로 우대’가 예능에서 통할 리 없다. 대중의 눈길을 잡아당기는 노년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소설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인 박생강은 “액티브 시니어의 거침 없는 입담과 몸짓엔 꾸미지 않은 신선함이 있다”며 “이 재미에 그들의 인생 경험까지 어우러지면서 청년이 반응하고 환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부자가 ‘리치강’ 된 사연 

강부자는 프로축구 K리그 전북 현대에서 뛰는 외국인 후보 선수 티아고의 이름은 물론 그의 등 번호(11번)까지 외우는 ‘축구 마니아’다. 여든을 앞둔 여배우가 축구 지식을 뽐내는 것 만으로도 독특하다. 강부자는 더 나아 간다. 그는 “볼 넣는 사람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볼 넣게 해준 사람도 기억한다”며 “그 이유는 내가 주연보다 조연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세한 정보에 자신의 인생 얘기를 덧대 울림까지 준 것이다. 축구 이야기가 풍성해지다 보니 네티즌은 강부자의 이름인 부자의 영자 표현(Richㆍ리치)을 활용해 그를 ‘리치 강’이라 부른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2’ 제작 관계자는 “처음엔 강부자 선생님 방에 네티즌 글이 빨리 올라오지 않아 걱정했다”며 “하지만 알고 보니 채팅 참여자들끼리 강부자 선생님 속도에 맞춰 글 올리자고 뜻을 모은 뒤 서로 느리게 채팅을 즐겨 흥미로웠다”고 귀띔했다.

TV 보다 표현이 자유로운 유튜브 등에서는 액티브 시니어의 활약은 눈부시다. ‘실버 유튜버’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박막례(72)씨는 거침없는 입담과 구수한 사투리로 구독자수 80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인 IT기업 구글 본사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았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나이가 아니라 취향과 기호로 모이는 디지털 문화의 특성을 고려하면 액티브 시니어 콘텐츠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요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세대 갈등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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