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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오면 집 드려요" … 폐교 위기 초등교 살린 '상상력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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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오면 집 드려요" … 폐교 위기 초등교 살린 '상상력의 기적'

입력
2019.03.30 09:00
수정
2019.03.30 17:5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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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 놓이자 “입학, 전학 가정에 새 집 대여” 홍보 

[저작권 한국일보] 21일 오후 4시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 하굣길은 아이들의 경쾌한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정문 앞에서 안전 지도를 하는 대한노인회 어르신들은 “등하굣길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배부른 심정”이라고 흐뭇해한다. 길 건너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아이들이 없었던 지난해에는, 대부분 통학버스를 타고 이동해 등하굣길이 개미 한 마리 없이 한산했다고 한다. 괴산=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21일 오후 4시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 하굣길은 아이들의 경쾌한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정문 앞에서 안전 지도를 하는 대한노인회 어르신들은 “등하굣길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배부른 심정”이라고 흐뭇해한다. 길 건너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아이들이 없었던 지난해에는, 대부분 통학버스를 타고 이동해 등하굣길이 개미 한 마리 없이 한산했다고 한다. 괴산=홍인기 기자

“What do you do on weekends? (너는 주말마다 무엇을 하니?)” (원어민 영어 교사)

“I usually go to the farm. (나는 대개 농장에 가.)” (5학년 학생 일동)

6교시 영어 수업이 한창인 21일 오후 3시, 교실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영어 문장을 외치던 기세와 달리,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은 8명뿐. 담임교사와 원어민 영어 교사를 포함해 모두 10명만이 교실을 지키고 있다. 도시 학교는 물론, 어느 유명 학원보다 질 좋은 수업이 가능한 것은 교사 1명당 학생 4명이라는 ‘황금 비율’ 때문일 터. 수업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명의 아이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교사의 질문에 답했다. 누구 하나 특출날 것 없이 ‘도토리 키재기’인 아이들은, 막히는 부분마다 서로 힘을 모아 하나의 영어 문장을 완성해 냈다.

이날 화기애애한 수업 분위기와는 달리, 백봉초는 불과 수 개월 전만 해도 폐교의 기로에 놓여 있었고, 사실 지금도 위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저출산ㆍ고령화 국면의 여느 시골 학교처럼, 학생 수 감소로 교육청이 통폐합 대상으로 지정을 한 터다. 아이들은 매일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학교가 없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눈물의 호소를 했다. 10여년 전부터 이곳에서 평교사로 재직하다가, 학교를 살리고자 의욕적으로 2016년 공모 교장에 부임한 신복호(55) 교장은 “교장 선생님이 최선을 다할게”라고 대답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발 구르기는 마찬가지였다.

2018년에는 단 한 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그마저도 1학기를 마치고 전학을 가는 바람에, 지난해 1학년 학급은 소멸했다. 엄청난 위기였다. 단 두 명인 6학년 학생은 전교회장 선거에 나란히 입후보해 각각 학생회장과 학급반장을 나눠 맡았을 정도다. 4년 전 백봉초는 괴산군 내 축구대회에서 1등을 했을 정도로 실력파였지만, 3년 동안 11명의 정규 멤버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지난해 러시아월드컵을 보며 조현우 선수 같은 골키퍼를 꿈꾼 3학년 영탁(9)이는, 운동장에서 혼자 드리블 연습만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영탁이는 팀워크를 자랑하며 운동장을 누빌 수 있게 됐다. 새 친구들이 전학을 와 드디어 11명이 모였기 때문이다. 축구팀은 19일부터 첫 연습을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5명, 이 학교에 딸린 병설 유치원에 5명, 모두 10명이 새 학기에 전학을 왔다. 지난해 26명(유치원생 포함)에 불과했던 전교생 수는 37명까지 훌쩍 뛰었다. 21일, 알록달록 2층 건물의 학교에 들어서기 전부터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 소리가 창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사라졌던 2학년 학급은 되살아났다. 8명으로 가장 학생 수가 많아진 5학년 학급은 올해부터 짝을 지어 앉을 수 있게 됐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하림(11)이와 동혁(11)이가 전학 오기 전에는, 한 사람씩 일렬로 앉았다. 5명이 새로 들어와 인구밀도가 2배로 폭증(?)한 유치원에는 장난감을 두고 없었던 경쟁마저 생겼다. 뿐만 아니라, 돌잡이 아기까지 백봉초에 입학하기 위해 대기 중이라고 한다. 대체 1년 사이 이 시골 마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저작권 한국일보] 21일 드론으로 촬영한 백봉초등학교와 길 건너 ‘행복나눔 제비둥지’가 있는 충북 괴산군 제비마을 전경. 괴산=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21일 드론으로 촬영한 백봉초등학교와 길 건너 ‘행복나눔 제비둥지’가 있는 충북 괴산군 제비마을 전경. 괴산=홍인기 기자

 ◇’두껍아 새 집 줄게, 학교에 와다오’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하는 가정에 새 집을 빌려드립니다. 단, 이 학교에서 아이가 졸업하는 조건으로요.”

지난해 여름, 충북 괴산군 주민들이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게시판에는 파격 조건만큼이나 절절한 사연이 담긴 게시물이 올라왔다. 마을에 하나뿐인 76년 된 초등학교가 학생 수 감소로 교육청 통폐합 대상에 지정됐고, 위기를 타개하고자 주민ㆍ군청ㆍ학교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입주자 자치 활동에 사용될 월 5만원의 관리비만 내면 집을 줄 테니, 일단 이사를 와 아이를 학교로 전ㆍ입학하라는 ‘통 큰 제안’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농ㆍ어촌 지방자치단체들이 선보였던 귀촌(歸村) 아이디어들과는 행간에 스며든 생각이 미묘하게 달랐다. “공짜 집을 줄 테니, 우리 마을에 평생 정착하고 살라”고 터무니없이 강요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아이를 좀 낳으라”고 부추기며 장려금을 손에 쥐여주며 개인을 ‘출산도구화’하지도 않았다. 그저 초등학교 학령 기간만이라도 마을에 살아보고, 괜찮으면 더 거주하되, ‘일단 학교부터 살리자’는 대범한 제안이었다. 간절한 마음은 솔직했고, 그래서 더욱 호소력이 짙었다.

일단 반응은 있었다. “우와, 자연에서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네요. 그런데 시골에 가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죠.”, “미세먼지 때문이라도 가고 싶은데, 삶의 모든 기반이 도시에 묶여 있네요.” 수많은 인터넷 댓글은 마치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귀촌 생활에 대한 동경과 결단할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을 동시에 내비쳤다.

게시물에 나오는 ‘우리 동네 초등학교’는 부흥1리부터 5리까지를 일컫는 일명 ‘제비마을’에 하나뿐인 학교 백봉초다. 추운 겨울엔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고 봄이 되면 돌아오는 제비가, 마을 인심이 좋아 사시사철 떠나지 않는 곳이라고 해 붙여진 옛 이름이 그대로 지금까지 통칭되고 있다.

사람도 제비처럼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수도권 중심의 나라에서 ‘지방소멸’의 위기를 제비마을이라고 피할 수 있었을까. 청량한 공기와 기름진 땅이 길러낸 아이들은 장성하자마자 도시로 떠나버렸다. 주민들이 대비할 틈도 없이 조용히 진행된 공동체의 소멸 위기는 갑자기, 그것도 돌이킬 수 없게 마을을 휘몰아쳤다. 이제 제비마을 전체 인구는 5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노인들은 “아이 울음 소리를 1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 한다”고 말한다.

마을의 위기는 학교의 위기에서부터 왔다. 1943년 설립돼 대부분 마을 아이들을 길러낸 백봉초의 통폐합 소식이 전해지자, 동네엔 말 그대로 비상이 걸렸다. 학부모 대표도, 주유소 옆에서 식당을 하는 영탁이네 아버지와 삼촌도 모두 이 학교 졸업생이다. 등하굣길마다 아이들 안전지도를 하는 대한노인회 신상천(71)씨도 12회 졸업생이고, 그의 큰딸도 동문이다. 과장 조금 보태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 누구나 어떻게든 백봉초등학교에 뿌리를 둔 셈이다.

처음에는 ‘이대로 폐교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인구 감소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섭리일 테고, 평균 연령이 60대인 마을에서 우리네의 자식들도 도시로 떠났는데, 도대체 누구를 어디서 데려올 수 있겠느냐는 자조였다. 폐교돼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가면, 교육청에서 ‘통폐합 지원금’ 20억원을 전학 갈 학교에 교부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폐교 찬성론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충북교육청은 학부모 60% 이상이 찬성하고, 지역사회의 동의가 있을 때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한다.

‘내 아이’만 생각하면 폐교가 맞았다. 저학년 영탁이 엄마 장문희(42)씨도 마음이 흔들렸던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학교가 사라지면 지역은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이 계속 맴돌아 차마 폐교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알고 보니 학교와 마을에 조금씩 마음의 빚을 진 모든 주민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 내 아이의 이익보다, 우리 동네와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정도로 학교, 동문, 마을 사람들이 애틋하다면, 학교를 한번 살려 보자’라는 암묵적 합의에 이르렀다.

[저작권 한국일보] 21일 오후 충북 괴산군 제비마을 부흥권역센터 회의실에서 ‘행복나눔 제비둥지’에 새로 입주한 주민들(오른쪽 세 명)과 기존에 살던 주민들이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괴산=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21일 오후 충북 괴산군 제비마을 부흥권역센터 회의실에서 ‘행복나눔 제비둥지’에 새로 입주한 주민들(오른쪽 세 명)과 기존에 살던 주민들이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괴산=홍인기 기자

이에 지난해 초 제비마을에는 ‘백봉초 살리기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위원장으로 총대를 멘 사람은 한석호(60) 백봉초 총동문회장. 때 마침 제비마을은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됐다. 국비만 25억9,000만원이 투입되는 큰 사업이었다. 마을 사업을 위해 구성된 ‘제비마을 부흥권역 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라는 주민자치 모임도 학교 살리기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여기에 충북도와 괴산군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손을 보탰다. 5년 동안 진행되는 사업에 42억원 가량을 확보했다. 지역 주민과 괴산군 관계자들은 매일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마을을 살릴 것인가’를 고민했다. 한때 관광 트렌드였던 구름다리를 만들어 관광객을 모으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한 위원장은 그러나 머지않아 주민들의 여론이 의미 없는 볼거리에서 멀어졌다고 말했다. “전국의 많은 죽어가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를 유치하겠다고 눈요깃거리가 될 만한 물레방아를 놓거나 뜬금없이 관광 시설을 설치하곤 하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구름다리 보겠다고 누가 이곳까지 오겠어요. 실질적으로 마을을 지키려면 학교부터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민들은 ‘구름다리 계획’을 폐기하고, 사업비 중 8억2,000만원을 들여 아이를 백봉초에 전ㆍ입학시키는 가정이 머무를 주택을 건립할 수 있도록 군에 요청했다. 괴산군은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2017년 5월 공사에 들어갔고, 집의 윤곽이 나오던 지난해 여름부터 알음알음 홍보에 나섰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걱정이 없진 않았다. 이상미(40) 백봉초 학부모 대표는 “내심 처음엔 누가 집 준다고 이런 깡촌 시골로 오겠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SNS 등으로 홍보한 지 한 달 만에 모집 가구의 3배인 18가구가 문의를 해왔고, 3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초등학생이 있는 가구, 주민등록 이전, 다자녀, 저학년, 귀농인 우대’ 등의 조건과 주민 면담을 통해 6가구가 선정됐다. 주민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죽어가는 시골 마을에 숨을 불어넣은 것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백봉초등학교 정문 앞길 건너 새로 생긴 건물에 여섯 식구가 입주했다. 날아온 제비가 오래 머무는 터가 되길 바라며 붙인 이름은 ‘행복나눔 제비둥지.’ 21일 오후, 제비둥지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괴산=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백봉초등학교 정문 앞길 건너 새로 생긴 건물에 여섯 식구가 입주했다. 날아온 제비가 오래 머무는 터가 되길 바라며 붙인 이름은 ‘행복나눔 제비둥지.’ 21일 오후, 제비둥지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괴산=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 “학교에 반했다” 시골로 온 도시 가족 

올 2월부터 주말마다 제비마을은 이삿짐을 실은 차들로 분주했다. 트럭들은 상아색 2층 건물 앞을 쉴 새 없이 드나들었고, 3월 13일 하림이네를 마지막으로 이주 행렬은 끝이 났다. 초등학교 건물에서 도로 하나 건넌 곳에 지어진 이주민들을 위한 주택건물의 명칭은 ‘행복나눔 제비둥지’. 새로 날아온 제비들이 떠나지 않고, 둥지에 머물렀으면 하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동문 한 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타지에서 온 가족들이다. 타지 생활을 번갈아 가며 오고 가는 가족까지 포함해 부모 12명, 아이 16명이 제비마을로 이사를 왔다.

자녀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선택한다’는 기본적인 경제 원리를 거스르는 강력한 변수다. 학군 때문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울 아파트 호가는 1억, 2억원이 널뛴다. 학군 좋은 동네의 집은 웃돈을 얹어서라도 입주하는 욕망의 근원이 된 지 오래다.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면 수도에서 녹물이 나오는 고생을 감수하고, 학부모의 생물학적 나이와 동년배인 아파트에서 세입자 생활을 자처하는 게 현실이다.

아이를 데리고 시골행을 선택하는 것은, 이런 세태 속에서는 어쩌면 ‘미친 짓’일지 모른다. 도시를 버리고 제비마을로 이주한 부모들도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적응해야 했기에, 이주에 앞서 지난해 여름 가구마다 2, 3번씩 마을에 와 학교를 답사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물으며 신중하게 결정했다. 처음에 하림이는 서울에서 다니던 학교의 한 학급 규모에 불과한 전교생 수를 확인하곤 “이게 전부냐”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동갑내기 정연(11)이를 만나곤 이내 “내년에 나도 이 학교 다닐 테니 전학 올 때까지 기다려”라고 씩씩하게 외쳤다. 그리고 정연이는 새 학기 하림이의 짝꿍이 됐다.

천정한(43)ㆍ박희영(46)씨 부부는 하림이를 낳아 키우는 내내 아이를 끊임없이 돌아가는 공교육의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고 싶지 않았다. 취학 전에는 공동육아, 학교에 입학하고서는 대안학교 등 다른 방안을 알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교육 방식과 기관일수록 감당하기 힘든 교육비가 들었다.

“여러 아이를 두고 선행학습부터 시작해 오직 학습 위주로 아이를 끌고 가는 공교육 시스템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기초학력 수준만 갖추되, 아이는 자연 속에서 편하게 놀고, 하고 싶은 걸 맘껏 해야 한다는 게 저희 부부의 오래된 생각이었죠.”

교육을 위한 귀촌은 항상 품고 있던 선택지였다. 제천, 금산, 거창, 장수 등 전국 곳곳을 다녔지만, 막상 결심이 서지 않았다. 직장 문제가 컸다. 천씨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문화기획자면서, 동시에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 작은도서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서울에서 프리랜서 문화기획자로 일했지만 괴산 행 직전 일을 그만뒀다.

“반드시 가족 모두가 이주해야 한다고 했으면 못 오지 않았을까요? 처음 이곳을 알게 돼 마을에 ‘세 가족 모두 가지는 못하고 아이와 엄마만 이주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라며 ‘그런 건 살면서 천천히 자리를 잡아나가 보자’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어요. 실제로 입주한 여섯 가정 중, 네 집은 주말부부죠.” (천씨)

“저희는 제비마을의 이런 부분이 기존의 ‘한계를 배제한 채로 무작정 오기만 해라’고 하는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생업이 없는데 무작정 내려갈 수는 없죠. 한계를 인정하되, 먼저 ‘집’을 해결하고, 그다음 아이와 연관된 ‘학교’ 욕구를 충족한 뒤, 일자리 등을 알선하거나 자립을 돕는 형태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도 된다는 생각이 마음에 와 닿았죠.” (박씨)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서울 은평구의 재개발지역 공사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학교에 가기 위해 하림이는 온갖 소음과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학교에 보내는 엄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재개발 이주 문제로 아이들도 점점 빠져나갔다. 그나마 남아 있는 아이들은 방과 후 학원으로 일제히 달려갔다. 외동인 하림이는 집에만 오면 “심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괴산으로 이사 온 지 고작 일주일, 아이는 더 이상 “심심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저작권 한국일보] 친구들이 모두 학원으로 떠나 혼자 남겨져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살았던 서울 아이 하림(11)이는 이제 둘도 없는 친구 동혁(11)네 삼 남매가 이웃에 있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아이들의 우애는 부모에게로 번졌다. 시골 학교를 살리기 위해 지어진 ‘행복나눔 제비둥지’는 그렇게 하나의 터전이 되어간다. 괴산=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친구들이 모두 학원으로 떠나 혼자 남겨져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살았던 서울 아이 하림(11)이는 이제 둘도 없는 친구 동혁(11)네 삼 남매가 이웃에 있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아이들의 우애는 부모에게로 번졌다. 시골 학교를 살리기 위해 지어진 ‘행복나눔 제비둥지’는 그렇게 하나의 터전이 되어간다. 괴산=홍인기 기자

괴산으로 내려온 후 도시에서 외로워하던 아이에겐 새로운 형제가 생겼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와 책가방만 던져놓고, 하림이는 옆 동 동혁이네로 간다. 동혁이 집에는 3학년 동윤(9)이와 1학년 래아(7)가 있다. 그렇게 같은 둥지에 사는 친구와 컴퓨터 게임을 하고, 흙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타다 해가 저물면 “집에 와서 저녁밥 먹으라”는 엄마의 호령에 아이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삭막한 도시 아파트 풍경 속 잊고 지냈던 90년대 이전 골목길 풍경이다.

동혁네에서 ‘통 큰 결정’을 한 건 엄마 오영경(37)씨였다. 경기도에 거주하며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던 오씨 역시 온라인 공간에서 ‘제비 둥지’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답사 차 먼저 왔다. 오씨는 백봉초등학교에 들어서자마자 교정을 둘러싼 산, 아이들을 한 품에 안아주는 600년 된 느티나무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 경기도에서도 혁신 학교에 보냈어요. 흔히 시골 학교라고 하면 아이들이 적고 시설도 낙후했을 거로 생각하는데, 답사 때 편견이 산산조각 났죠. 교육 프로그램은 또 어떻고요. 방과 후 피아노, 첼로, 코딩, 드론, 난타, 승마까지. 도시에서는 비싸서 가르칠 엄두도 안 날 활동이 모두 갖춰져 있어요. 게다가 돈 한 푼 내지 않고 학교에서 오후 4시까지 모든 아이를 책임져요. 엄마들은 그때까지 자유를 만끽해요.”

세 아이가 전ㆍ입학을 하자 학교 살리기 일환으로 동문과 학부모, 지역주민, 교직원이 동참해 마련한 기금에서 주는 장학금 60만원을 받았다. 백봉초는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 오거나, 졸업할 때 학생 한 명 당 장학금 20만원을 준다. 오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 왔을 뿐인데, 학교 장학금에 더해 괴산군에서 다자녀 가정에 제공하는 ‘셋째 자녀 입학축하금’까지 받게 됐다”라고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저작권 한국일보] 시골 학교라고 해서 교육 과정이 빠진다고 생각하면 오산. 방과 후 피아노, 첼로, 코딩, 드론, 난타, 승마까지. 도시에서는 비싸서 가르칠 엄두도 안 날 활동이 모두 무료인데다, 좋은 시설까지 학교에 갖춰져 있다. 괴산=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시골 학교라고 해서 교육 과정이 빠진다고 생각하면 오산. 방과 후 피아노, 첼로, 코딩, 드론, 난타, 승마까지. 도시에서는 비싸서 가르칠 엄두도 안 날 활동이 모두 무료인데다, 좋은 시설까지 학교에 갖춰져 있다. 괴산=홍인기 기자

 ◇ 이주 성공했지만…남은 과제는 주민 화합 

학교는 폐교라는 절벽 앞에서 한숨 돌렸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모두 안다. 새 이웃들로 동네엔 웃음소리와 생기가 돌게 됐지만, 날아온 제비를 오래 머물게 하는 게 과제로 남았다. 아직 초창기이지만, 원주민과 이주민 간 화합하는 문제가 큰 고민거리다. 한석호 위원장은 “이 마을에서 생업을 찾을 수 있도록 근처 일자리를 알선하고, 농사를 짓고자 하는 가정에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게 기존 주민들의 몫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합은 제비둥지 안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각자 살아온 환경, 떠나온 고향도 다르지만 학부모들은 왜 이사를 오게 됐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아이를 키우는지 이야기 나누며 서로 알아가고 있다. 동혁이 엄마 오씨는 하림이 엄마 박씨를 언니라 부르며 따른다. 책이 많은 천씨 부부네 집에 가서 래아와 읽을 책을 빌리기도 한다. ‘목사님네’라 불리는 2학년 하진(10)이네는, 김치찌개를 한솥 끓일 때면 “하림이네 먹으라”며 나눠주기 바쁘다.

“서울에서 도서관 일을 한 우리(천씨) 부부는 언젠가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요. 책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꾸려 더욱 이 마을 아이들이 다채롭게 자라날 수 있게요. 제비둥지에 온 부모들도 각자 재능이 많은데, 그걸 마을에 베풀고, 또 하나의 일로 연결해 지역 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자립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둥지’ 밖 화합은 마을 텃밭에서부터 발화했다. 한 위원장은 전답 1,917㎡(580여평)를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에게 무상 대여하고 있다. 그중 여섯 고랑을 새로 온 제비둥지 가족에게 한 고랑씩 나눠 줬다. 자기 몫의 땅에 각각 작물을 심기보다, 둥지 가족은 물론 기존 학부모들과도 원하는 작물을 논의하고 함께 텃밭을 돌볼 계획이다. 학부모들은 지난해 텃밭에서 나온 수익금 200만원을 학교에 기부했다.

지역 사회의 노력에 괴산군도 화답하고 있다. ‘1차 제비둥지’는 6가구를 모집하는 데에 그쳤지만, 올 상반기 중 제비둥지 추가 건립을 검토해 더 많은 외지 인구를 유입한다는 계획이다. 2021년 3월까지 소규모 학교 적정 규모인 학생 수 60명(유치원생 제외)이 되지 않으면 백봉초를 둘러싼 통폐합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게 몰아칠지 모른다. 앞으로 2년 남짓, 어른들의 화합과 노력에 학교와 마을의 운명이 달렸다.

[저작권 한국일보] 백봉초등학교에 딸린 병설유치원의 원아는 5명에서 10명으로 늘어 장난감을 두고 경쟁마저 생겼다. 괴산=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백봉초등학교에 딸린 병설유치원의 원아는 5명에서 10명으로 늘어 장난감을 두고 경쟁마저 생겼다. 괴산=홍인기 기자

괴산(충북)=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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