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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면옥 보존, 함흥냉면은 철거… 기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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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면옥 보존, 함흥냉면은 철거… 기준이 없다

입력
2019.03.08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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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노포 보존 형평성 논란 

 제대로 된 연구나 원칙 없어 

 변별력 없이 생활유산 선정 

 

을지면옥 서울 본점. 배우한 기자
을지면옥 서울 본점. 배우한 기자

‘35년 된 을지면옥은 보존하고 67년 된 원조함흥냉면은 철거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1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구역 일대 노포(老鋪) 보존 방침을 밝힌 것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생활유산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생활유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이어져 내려오는 시설, 기술, 업소 등이나 생활모습, 이야기 등 유무형의 자원을 의미하며 2015년 역사도심계획에 반영됐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에 위치한 을지면옥과 을지다방, 3-3구역 양미옥, 3-4구역 조선옥은 이 때 생활유산에 선정됐다.

하지만 당시 생활유산 선정은 특정한 목적을 가졌다기보다는 보편적인 필요성 차원에서 목록을 정리한 정도였다. 지정 방식도 문헌조사 및 현장조사를 거쳐 ‘최초이거나 희소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 설립 연대가 길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상호로 지속적으로 영업을 해 온 상업시설이나 그에 상응하는 것’이라는 기준을 통과하면 선정됐다. 박원순 시장이 올해 1월 “을지로 일대 재개발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생활유산인 을지면옥과 을지다방, 양미옥, 조선옥은 연말까지 철거가 보류됐다.

반면 길 건너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은 상황이 다르다. 종로구 예지동 원조함흥냉면(67년째 영업)은 철거와 함께 이주할 계획이고, 함흥곰보냉면(60년째 영업)은 철거에 대비해 인근 세운스퀘어로 이전했다. 서울시의 생활유산 선정 기준에 비춰 보면 원조함흥냉면과 함흥곰보냉면이 을지면옥에 비해 생활유산으로나 노포로서나 가치가 밀린다고 볼 근거가 희박하지만 정작 이 가게들은 철거와 함께 이주가 예정돼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생활유산 선정 당시 생활유산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법적 고시를 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생활유산의 변별력 차이를 찾기 어렵고 지정 과정의 불완전성과 법적 강제력 미비를 인정한 것이다. 생활유산은 근현대 건축자산과 달리 전문가 자문 및 세부조사를 거치지 않아 유산으로서의 신뢰도도 낮을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피해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3구역 재개발 시행사인 한호건설은 토지주 75% 이상 동의라는 법적 절차를 다 밟고도 연말까지 철거 작업이 중지되면서 매달 20억원의 금융비용을 물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제대로 된 원칙도 없고 법적 구속력도 없는 생활유산이 백년대계인 도시계획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는 평이 중론”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을지로3가가 걷기 편하고 서울의 과거 모습을 제대로 응축한 지역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의 명소로 떠오른 만큼 생활유산의 필요성은 인정된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이번 을지면옥 보존 논란을 계기로 좀 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생활유산 기준을 정립해 논란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생활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정비가 필요한 건 맞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생활유산 선정과 보전 방식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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