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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트럼프 장벽과 만리장성

입력
2019.01.21 18:00
수정
2019.01.21 19:07
30면
0 0

21일(현지시간)로 31일째에 돌입하며 역대 최장 기록(종전 22일)을 경신 중인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은 ‘트럼프 장벽’ 예산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원인이다. 트럼프 장벽은 3,000㎞가 넘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9m 높이로 차단하는 프로젝트로, 트럼프 정부는 올해 57억달러(약 6조4,0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그러나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장벽 건설에 반대하며 새해 예산안 통과를 막는 바람에 미 행정부 기능이 서서히 멈춰 서고 있다.

□ 트럼프 장벽은 중국 만리장성을 연상시킨다. 지형의 기복과 중첩 부분을 고려하면 만리장성이 두 배 길지만, 지도상으로는 비슷해 트럼프 장벽도 역사에 기록될 만한 대형 프로젝트다. 흔히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축조했다고 알고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만리장성은 대부분 14~17세기 명나라가 지은 것이다. 명의 아킬레스건은 이전 왕조와 마찬가지로 북방 민족의 위협이었다. 광활한 초원 지역의 유목 민족은 경작지가 부족해 한족 영토를 약탈할 수밖에 없었다.

□ 이런 상황을 잘 아는 명의 정치인들은 교역을 통한 공존을 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벌 대립이 극심한 명 조정에서 ‘정벌’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득세하면 북벌에 나섰지만 그 때마다 북방민족은 뿔뿔이 흩어져 정벌을 번번이 헛수고로 만들었다. 결국 명 조정은 만리장성 증ㆍ개축을 최종 해결책으로 채택한다. 하지만 장벽을 쌓아도 북방민족은 채 짓지 못한 지역으로 우회해 침입했다. 장벽 증ㆍ개축은 국고가 바닥날 때까지 길어져 북방민족이 세운 청이 장성을 넘어 명을 무너뜨릴 때까지 계속됐다.

□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말 트위터를 통해 “대규모 불법 이주민 행렬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장벽 없이는 막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년간 멕시코 국경을 통해 밀입국하다 체포된 사람은 꾸준히 줄고 있다. 불법 이민 대부분은 합법적으로 입국해 체류 기간을 넘긴 사람들이다. 자국 내 어려움을 외부 위협 탓으로 돌리고, 실효성이 없어도 눈에 띄는 거대 구조물을 세워 국민을 현혹하려는 정치적 시도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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