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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처벌 강화하는데 동승자 방관 행위엔 ‘팔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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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처벌 강화하는데 동승자 방관 행위엔 ‘팔짱’

입력
2019.01.15 04:40
수정
2019.01.15 07:0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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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의사당대로에서 영등포경찰서 교통외근3팀이 음주운전 단속중인 모습. 최나실 기자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의사당대로에서 영등포경찰서 교통외근3팀이 음주운전 단속중인 모습. 최나실 기자

한창 연말 분위기가 무르익던 지난달 중순. 서울 종로구 한 도로에서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승용차가 맞은편 버스를 그대로 들이 받은 뒤 뺑소니를 치기 시작했다. “당장 차를 멈추라”는 경찰 명령도 무용지물. 차는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를 또 다시 치고서야 멈췄다. 운전자 임모(35)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201%, 면허 취소 기준(0.10%)의 2배가 넘는 수치였다. 임씨는 특가법상 도주치상ㆍ위험운전치상 및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 등 혐의로 결국 구속됐다.

당시 차량 안에는 A씨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필름이 끊길 때까지’ 임씨와 함께 술을 마셨고 △같은 숙박업소로 이동하기 위해 임씨 차량에 탑승했으며 △음주운전을 말리지 않았지만, 경찰은 음주운전 방조 혐의가 없다고 봤다. 적극적으로 음주운전 사실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음주운전자 처벌 수위를 강화한 일명 ‘윤창호법’이 지난해 연말 시행되는 등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동승자의 ‘방조’ 행위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음주사실을 뻔히 알면서 그냥 두고만 봤다는 행위 자체가 사실상 음주운전의 공범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를 단속하는 경찰은 “현장에서 판단하기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실제 검ㆍ경이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입건한 경우는 미미하다. 2016년 4월 음주운전 동승자를 방조범으로 처벌하는 내용이 담긴 ‘음주운전사범 처벌 및 단속 강화 방안’을 발표한 2016년에 142명, 2017년 157명이 입건됐다. 2017년 음주운전 적발 건수가 1만 9,517건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 미만에 해당하는 극소수다. 지난해 9월 부산 해운대에서 음주 상태로 BMW를 몰며 동승자와 딴짓을 하다 윤창호씨를 치어 숨지게 한 박모(26)씨 동승자 역시 음주사고 경위를 전혀 기억을 못할 정도로 만취상태였다는 이유로 입건되지 않았다.

{저작권 한국일보}음주운전 동승자 처벌. 삽화=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음주운전 동승자 처벌. 삽화=박구원 기자

가장 큰 이유는 음주운전 방조 혐의 입증이 까다로운 탓이다. 운전자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운전을 적극적으로 지시ㆍ부탁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에 ‘태워달라’는 등 적극적으로 부탁을 한 것이 나와야 방조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충북 청주시에서 동승자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방조 혐의를 피했는데 이 때도 블랙박스 영상 등 객관적 증거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단속 경찰 입장에서도 “국민 법 감정은 이해하지만 현실상 쉽지가 않다”고 하소연이다. 동승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자리에서 체포할 수 없는 노릇이고, 사고가 아닌 이상 수 많은 음주차량에 대해 일일이 동승자까지 조사할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소재 일선 경찰서 한 간부는 “동승자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면서 “방조를 어디까지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의 막대한 피해를 감안할 때 음주운전을 말리지 않는 ‘소극적 방조’만으로 동승자를 처벌하는 법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현재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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