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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말한다… 스포츠 성폭력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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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말한다… 스포츠 성폭력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입력
2019.01.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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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의 요람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이곳에서도 지도자들에 의한 성폭력이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나 더 큰 충격을 준다. 현재 취재진 등 외부인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진천선수촌. 진천=연합뉴스
국가대표의 요람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이곳에서도 지도자들에 의한 성폭력이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나 더 큰 충격을 준다. 현재 취재진 등 외부인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진천선수촌. 진천=연합뉴스

10여 년 전과 최근의 스포츠 성폭력 실태 조사 보고서를 비교해 보면 한국 체육에서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여실히 드러난다.

200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수행한 ‘프로스포츠 팀과 직장운동부의 여성선수 권익실태 조사’에 따르면 설문 대상 선수 2,254명 가운데 16.1%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발생 장소는 훈련장이 55.8%로 가장 높았고 회식자리 등 공개된 장소(26.9%), 합숙소(17.3%), 전지훈련 숙소(11.5%) 등의 순이었다. 성폭력 가해자는 코치(44.2%)와 감독(38.5%)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감독보다 선수들과 접촉 빈도가 높은 코치들에 의한 성폭력이 더 많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 보고서는 코치가 선수에게 성적 요구를 거절하면 선수 생활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방식으로,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으로 성폭력이 가해졌고 선수들이 피해 사실을 알려도 실질적 조치가 더디게 진행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가해자가 징계 뿐 아니라 법적 처벌을 받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가해자가 속한 기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하며 성폭력의 온상이 되고 있는 합숙소의 운영 기간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합숙소를 폐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07년 여자 프로농구 팀에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 체육계에서 처음 이뤄진 실태 조사였다. 이후 대한체육회는 2010년부터 2년 주기로 꾸준히 조사를 하며 보고서를 내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 조사’를 보면 성폭력 피해 경험은 일반 선수(초ㆍ중ㆍ고ㆍ대학ㆍ실업 소속)의 경우 3%, 국가대표 선수는 1.7%로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지도자들에 의해 숙소와 훈련장에서 성폭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18년 조사는 성폭력을 성희롱과 성추행, 강간 등 유형별로 구분했다. 일반 선수가 피해를 당한 장소는 성희롱은 숙소(27.4%)와 훈련장(22.6%), 성추행은 숙소(38.7%)와 훈련장(12.9%), 강간은 훈련장(50%)과 숙소(25%)가 많았다. 국가대표 역시 성희롱은 훈련장(50%)과 숙소(33.3%)의 순이었고 성추행은 훈련장과 경기장 비율이 50%로 같았다. 조사에서 국가대표의 강간 피해자는 없었다.

성폭력 가해자는 일반 선수의 경우 성희롱과 성추행 모두 지도자(11.4%, 11.8%)보다 선배(47%, 22%) 비율이 높은 경향을 보였지만 강간은 지도자가 40%를 차지했다. 국가대표도 성희롱 가해자는 절반 이상인 53.8%가 지도자로 선배(23.1%)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고 성추행 가해자는 100% 지도자였다. 이 보고서는 훈련장과 경기장, 숙소 등 특정 지역에서 성폭력이 많이 발생하는 만큼 CCTV 등을 설치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스포츠 성폭력은 지도자와 선수 간 뚜렷한 권력 관계에 전근대적인 합숙 시스템이 더해진 결과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문화체육관광부나 대한체육회 등 관계 기관은 10여 년째 근본 원인을 바꿀 생각 없이 실효성 없는 엇비슷한 대책만 반복해서 내놓는 현실이다. 2007년 연구책임자로 실태 조사를 진행했던 황정임 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정책확산전략실장은 “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쥔 기본 구조부터 바뀌지 않는 한 어떤 성폭력 예방 방법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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